비즈니스 기회
베트남학습노트-통일이후공산화시기(6)

1975년 4월 30일, 베트남은 마침내 통일을 이뤘다. 프랑스 식민지배와 미국과의 전쟁을 거치며 수십 년간 이어진 분단과 전쟁에 마침표를 찍은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러나 통일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험의 시작이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베트남 앞에는 서로 다른 체제와 경제구조, 사회적 경험을 가진 남과 북을 하나의 국가로 통합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었다.
통일 이후 실권을 장악한 레주언 지도부는 남부 사회를 빠르게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1976년 남북을 하나의 국가로 통합하고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를 확대했다. 남부의 기업과 상업시설을 국유화하고 농업의 집단화를 추진하는 등 시장경제의 흔적을 빠르게 없애려 했다.
하지만 전쟁으로 이미 황폐해진 경제에 급격한 체제 전환이 더해지면서 부작용이 나타났다. 생산과 유통의 비효율이 커지고 물자 부족과 인플레이션이 심화됐다. 특히 시장경제에 익숙했던 남부에서는 국가 통제와 기존 경제 질서가 충돌하면서 경제적 혼란이 커졌다.
정치적 통합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옛 남베트남 정부의 군인과 관료, 지식인 등을 대상으로 재교육이 실시됐고, 상당수가 수용시설에 보내졌다. 경제난과 정치적 압박을 피해 해외로 탈출하는 사람도 급증했다. 작은 배에 몸을 싣고 바다로 떠난 ‘보트피플’은 통일 이후 베트남이 겪은 사회적 혼란과 인도주의적 비극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록됐다.
대외관계도 악화됐다. 베트남은 통일 이후 소련과 밀착했지만 중국과의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 정권과 충돌한 베트남은 1978년 캄보디아에 군사 개입했고, 이듬해에는 중국과 전쟁을 벌였다. 주변국과 서방의 견제가 이어지면서 베트남은 국제적으로 고립됐고 경제적 부담도 커졌다.
베트남의 통일 이후 역사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과 국가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전혀 다른 문제임을 보여준다. 전쟁 중에는 ‘독립과 통일’이라는 목표가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지만, 평화가 찾아오면 경제와 정치, 지역 간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한다.
결국 베트남에서 통일은 역사의 종착점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가 국가를 지배할 것인가’를 넘어 ‘어떤 경제와 사회를 만들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베트남이 이후 경제개혁인 ‘도이머이’를 선택하게 된 배경에도 통일 이후의 값비싼 시행착오가 자리하고 있었다.
송덕호
본 내용은 저자의 허락으로 오이마켓 편집국이 축약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