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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컬럼]삼성·SK가 만든 820조 예산-반도체 호황에 국가의 미래를 걸어도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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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발표한 2027년 예산 820조 원은 숫자만으로는 화려하다. 올해보다 93조 원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니까. 하지만 이 숫자 뒤에는 뜻밖의 변수가 숨어 있다. 바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호황이다.
반도체 실적 호조로 법인세 수입이 115조 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이 초과세수를 '포스트 반도체' 시대를 준비하는 데 사용하겠다고 말한다. AI, 바이오, 피지컬 인프라, 지역균형발전에 162조 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편성했다.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취지는 옳다. 세계가 AI와 첨단 산업에 국가역량을 집중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투자를 주저할 수 없다는 논리도 일리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묘한 역설이 생긴다. 반도체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반도체 호황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반도체 산업은 '실리콘 사이클'이라는 주기적 호황과 불황을 반복해왔다. AI 혁명이 이 패턴을 완전히 바꿨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만약 반도체 수요가 예상보다 빨리 감소한다면? 기업 실적이 떨어지고 세수가 급감하면? 정부의 웅대한 프로젝트들은 어떻게 될까.
정부도 이 위험을 모르지 않는다. 미래대응기금 162조 원 중 45조 원만 즉시 투자하고 104조 원은 여유자금으로 보관한다고 했다. 2028년 이후 세수 증가율을 보수적으로 책정했고, 총지출도 단계적으로 낮추겠다는 계획도 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진짜 문제는 돈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한번 시작한 청년지원, 교육, 복지처럼 국민 생활과 직결된 정책은 줄이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일시적인 세수로 영구적 약속을 만들면, 위기가 올 때 난처해진다.
더 큰 병목은 국가의 실행능력이다. 전력, 용수, 인허가, 인력, 부지, 주민 수용성 등이 동시에 갖춰져야 하는데 정부가 동시에 추진하려는 사업이 너무 많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성공 확률이 높은 프로젝트에 국가역량을 집중하는 게 차라리 더 공격적인 정책이 될 수 있다. 특히 지역균형발전이 단순한 '나눠먹기'로 변질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820조 예산의 성패를 판단하는 기준도 재설정이 필요하다. 단순히 '예산을 얼마나 썼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만들어냈는가'여야 한다. 정부가 1조 원을 투자해 민간투자 5조 원, 10조 원을 끌어내고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가 탄생하며 다시 세수가 증가하는 진정한 선순환이 생겨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세 가지 시나리오를 구체화해야 한다. 반도체 초호황이 계속되는 경우, 정상 수준으로 내려오는 경우, 급격히 하강하는 경우다. 각 상황에서 어떤 사업을 우선하고 무엇을 연기할 것인지 미리 정해놓는 '재정 스트레스 테스트'도 필수다.
호황은 정책이 아니다. 호황은 정책을 실행할 기회일 뿐이다. 삼성과 SK가 문을 열어줬다면 이제는 정부의 실행력이 시험대에 오른다. 반도체 호황으로 더 큰 반도체 의존국가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그 기회를 지렛대로 삼아 진정한 '포스트 반도체 한국'을 구축할 것인가. 820조 예산의 진정한 성패는 이 질문에 대한 답에서 결정될 것이다.
출처 : 저스트이코노믹스
링크 : https://www.justeconomix.com/ko-kr/articles/153168
본 내용은 저자의 허락으로 오이마켓 편집국이 축약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