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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철 칼럼] '아자황'이 된 인류, 퇴행인가 새로운 공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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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오이마켓 플랫폼 개발 작업 중에 묘한 소름이 돋았다. 플랫폼 고도화를 위해 수정할 점들을 나열하자 AI인 클로드가 기다렸다는 듯 대안을 제시했다. 나는 그저 제시된 옵션 중 하나를 선택했을 뿐이다. 기술적인 세부 구조를 모르는 내가 할 일은 AI가 시키는 몇 가지 간단한 입력과 승인 작업이 전부였다. 문득 딥마인드 창업자 데미스 허사비스와의 바둑 대국에서 이세돌 9단 곁에 앉아 바둑돌을 대신 놓아주던 '아자황(Aja Huang)'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 자신이 어느새 AI의 지시를 수행하는 아자황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는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세상은 과거 상상 속 SF 영화나 소설의 장면들을 섭뜩할 정도로 현실화하고 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에서 우주인들은 통제권을 쥐어버린 인공지능 'HAL 9000'의 눈을 피하기 위해 조그만 우주선 구석에 모여 속삭이듯 대화를 나눈다. 인간이 도구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기이한 전도 현상이다. 또 다른 SF 클래식 에서는 지능과 감성을 갖춘 휴머노이드가 명품 시계를 만들어내자, 주인이 이를 시장에 팔아주고 기계의 이름으로 은행 계좌까지 개설해 준다. 자본과 금융의 주체마저 AI로 이동할 수 있음을 예견한 섬뜩한 통찰이다.
상상이 현실로 가시화되는 지금, 인류는 이른바 '지능의 외주화'를 겪고 있다. 기획부터 논리 구성, 코드 작성까지 도구가 전담하면서 스스로 고민하고 추론하는 능력이 점차 퇴화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인류의 몰락이나 '지능의 퇴행'으로만 단정할 수 있을까.
우리가 지닌 사유의 영역을 AI에게 넘겨주는 과정은, 어쩌면 인류가 기계와 공존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냉혹한 재정의의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AI가 제시하는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어떤 가치를 지향할지 결정하는 '목적의 설정'과, 그것이 가져올 결과를 책임지는 '인간적 통찰'이다. 내가 아자황처럼 복잡한 기술 구현을 AI에 맡겼다 하더라도, 플랫폼이 지향해야 할 방향과 사용자 가치를 정의한 것은 오직 인간의 몫이었다.
도구가 고차원적 지능을 대신할수록 인간은 자신이 가진 인간다움의 본질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포기한 채 기계의 선택만을 추종한다면 인류는 피동적인 존재로 퇴행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기계의 거대한 지능을 거름 삼아 더 본질적인 문제와 온기 있는 가치를 고민한다면, 공존의 미래는 냉정하지만 새로운 지적 번영의 시대가 될 수 있다. 기계가 지능을 맡아주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지혜로 인간의 자리를 지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