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기회
베트남학습노트-프랑스 식민지 시대(4)

역사는 누구의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흔히 식민지 역사를 피해자의 시선에서 배운다. 그것은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건을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면 당시 상대방은 무엇을 원했고, 어떤 전략을 세웠으며, 국제정세 속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의 베트남 식민지화 과정은 일본의 조선 식민화를 이해하는 흥미로운 비교 대상이다.
19세기 프랑스가 베트남을 정복했을 때 베트남은 오늘날과 같은 단일한 행정체계로 움직이는 국가가 아니었다. 오랜 역사 속에서 북부와 중부, 남부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17~18세기에는 북부의 찐(鄭)씨 세력과 중남부의 응우옌(阮)씨 세력이 장기간 대립하기도 했다.
프랑스는 바로 이 차이를 식민 통치에 활용했다.
1860년대 먼저 장악한 남부 코친차이나는 프랑스의 직할 식민지가 됐다. 비옥한 메콩 삼각주의 쌀과 농업 생산력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반면 광산과 노동력이 풍부한 북부 통킹은 보호령 형태로 통제했고, 응우옌 왕조의 수도가 있던 중부 안남 역시 황제를 형식적으로 존속시키면서 간접 지배했다.
이것은 단순한 행정 편의가 아니었다. 지역마다 다른 경제적 가치와 정치적 조건을 고려해 지배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필요한 자원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제국주의적 통치 방식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역적 차이 자체를 프랑스가 만들어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프랑스는 이미 존재하던 차이를 발견하고 그것을 식민 통치의 구조로 제도화했다. 식민지배란 영토를 점령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의 기존 질서와 균열을 새로운 지배체제 속에 편입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베트남인들의 대응 역시 하나의 모습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남부에서는 프랑스식 교육과 경제체제를 받아들이면서 식민지 질서 속에서 새로운 상업·부유층이 성장했다. 반면 중부에서는 프랑스의 간섭과 황실의 무력화에 반발한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근왕운동이 일어났다. 북부에서는 농민과 노동자, 민족주의자들의 저항이 점차 조직화됐고, 20세기에 들어서는 베트남 독립운동과 비엣민의 중요한 기반으로 발전했다.
이처럼 같은 식민지배 아래에서도 지역과 계층에 따라 협력과 타협, 저항의 방식은 달랐다. 역사를 단순히 ‘외세 대 민족’이라는 이분법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여기서 조선의 역사를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메이지 일본에게 조선은 매우 중요한 외교·안보 문제였다. 일본은 청나라가 전통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동아시아 질서가 서구 열강의 압력으로 무너지는 과정을 면밀하게 관찰했다. 특히 프랑스가 청나라와 충돌하면서 베트남에 대한 중국의 전통적 영향력을 제거하고, 조약과 보호국 체제를 통해 지배를 확립해 가는 과정은 일본이 참고할 만한 선례였다.
1876년 강화도조약에서 조선을 ‘자주국’으로 규정한 것도 이러한 국제질서의 변화 속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후 청일전쟁을 통해 청나라의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제거하고, 1905년 을사늑약을 거쳐 통감부를 설치하면서 일본의 조선 지배는 단계적으로 심화됐다.
물론 프랑스의 베트남 지배와 일본의 조선 식민화를 동일한 과정으로 볼 수는 없다. 두 지역의 역사적 조건과 국제정세, 침략의 방식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또한 일본의 조선 정책이 프랑스의 베트남 정책을 단순히 복제한 것이라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당시 제국주의 국가들이 서로의 성공과 실패를 관찰하고 학습했다는 국제적 맥락이다.
이 관점은 오늘날 우리의 역사교육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해국의 논리를 이해한다고 해서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상대가 무엇을 원했고 어떤 계산으로 움직였는지를 알아야 우리가 처했던 상황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가 베트남의 지역적 차이를 어떻게 통치 전략으로 활용했는지, 일본이 동아시아의 국제질서 변화와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험을 어떻게 관찰했는지를 함께 살펴보면 식민지화는 단순한 힘의 충돌이 아니라 치밀한 전략과 국제정세, 현지 사회의 균열이 맞물린 과정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역사를 제대로 공부한다는 것은 어느 한쪽의 시선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의 경험을 잊지 않으면서도 당시의 모든 행위자가 어떤 조건에서 무엇을 선택했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다.
그래야 역사는 과거의 분노를 반복하는 기록을 넘어, 우리가 왜 그런 상황에 놓였고 어떻게 대응했어야 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살아 있는 지식이 된다.
송덕호
본 내용은 저자의 허락으로 오이마켓 편집국이 축약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