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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가구가 쓰레기로…가을 이사철에 버려지는 ‘생활의 흔적’

이청원 · 2026.10.02

멀쩡한 가구가 쓰레기로…가을 이사철에 버려지는 ‘생활의 흔적’

본격적인 가을 이사철이 시작되면서 주택가 골목과 아파트 단지 곳곳에 가구가 무더기로 버려지고 있다. 책장과 서랍장, 식탁, 의자, 소파 등 종류도 다양하다. 눈에 띄는 것은 상당수 제품이 당장 사용해도 문제가 없을 만큼 외관이 멀쩡하다는 점이다. 새집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지는 가구가 적지 않은 셈이다.

가구는 한 번 버려지면 다시 자원으로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나무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합판이나 섬유판에 접착제와 표면재를 붙인 제품이 많고, 금속·유리·플라스틱 등 여러 소재가 함께 사용된다. 분해와 소재별 선별에 상당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폐가구 상당량은 재활용보다는 폐기물 처리 과정으로 넘어간다.

특히 문제는 ‘재사용할 수 있는 가구’와 ‘수명이 다한 가구’가 같은 방식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사용에는 문제가 없지만 이사 과정에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가구까지 폐기물로 분류되면 제품에 들어간 자원과 에너지 역시 함께 버려진다.

환경 측면에서 보면 가구 폐기는 단순히 쓰레기 하나가 늘어나는 문제가 아니다. 가구를 만들기 위해 투입된 목재와 각종 원료, 제조와 운송 과정에서 발생한 에너지와 온실가스까지 사실상 한꺼번에 폐기하는 결과가 된다. 새로운 가구를 생산하기 위해 다시 자원과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는 점에서 환경 부담은 더욱 커진다.

해법은 재활용만 강조하는 데 있지 않다. 환경 분야에서는 폐기물 처리의 우선순위를 ‘재사용’에 먼저 두는 접근이 중요하다. 상태가 양호한 가구라면 수리와 세척을 거쳐 다른 사람이 다시 사용하는 것이 원료로 분해해 재활용하는 것보다 자원 측면에서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비자가 쉽게 중고 가구를 넘길 수 있는 거래·기부 체계와 함께 지자체, 공동주택 관리주체, 재사용센터 등이 연계된 회수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사 과정에서 버려지는 가구 가운데 재사용 가능한 제품을 선별해 수거하고, 필요한 곳으로 다시 연결하는 체계가 갖춰진다면 폐기물 발생량을 줄이는 동시에 자원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

소비자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새집에 맞춰 새 가구를 들이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기존 가구를 수리하거나 재배치하고, 필요하지 않을 경우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는 선택지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가을 이사철 골목에 줄지어 놓인 멀쩡한 가구들은 우리 사회의 소비 방식과 자원순환 체계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가구 하나를 다시 사용하는 것은 단순히 쓰레기 하나를 줄이는 일이 아니다. 이미 투입된 자원과 에너지를 한 번 더 사용하는 일이다.

‘버리는 것’이 가장 손쉬운 선택이 된 구조를 바꾸는 것. 이사철마다 반복되는 폐가구 문제를 줄이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수거함이 아니라 버리기 전에 한 번 더 사용할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