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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학습노트-베트남 개혁 개방 "도이모이"와 그 이후(7)

1986년 12월 베트남 공산당 제6차 전당대회에서 공식화된 ‘도이모이(Đổi Mới)’는 베트남 현대사의 방향을 바꾼 결정적 선택이었다. 도이모이는 ‘새롭게 바꾼다’는 뜻이다.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일당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경제에서는 시장원리를 받아들이는 실용적 개혁이었다.
도이모이가 시작될 당시 베트남 경제는 벼랑 끝에 서 있었다. 통일 이후 추진된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와 국유화, 농업 집단화는 생산 의욕을 떨어뜨렸고 만성적인 물자 부족과 높은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캄보디아 문제와 중국과의 전쟁으로 국제적 고립까지 겹쳤다. 최대 후원국이었던 소련의 지원마저 줄어들면서 기존 경제체제로는 국가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이 커졌다.
변화의 핵심은 농업이었다. 베트남은 농민에게 장기적인 토지 사용권을 인정하고 생산물을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했다. 1988년 10호 결의로 대표되는 농업개혁은 농민들의 생산 의욕을 높였고, 베트남은 만성적인 식량 부족 국가에서 세계적인 쌀 수출국으로 탈바꿈했다. 계획경제의 틀 안에서 억눌렸던 시장의 기능을 인정한 것이 경제 전환의 출발점이었다.
개혁은 농촌에 머물지 않았다. 민간기업의 활동을 허용하고 국영기업을 개혁하는 한편 외국인 직접투자를 적극 유치했다. 1987년 외국인투자법을 시작으로 해외 자본과 기술을 받아들이면서 섬유와 신발 등 노동집약적 산업이 성장했고, 이후 전자·정보통신 분야로 산업구조가 확대됐다.
경제개혁과 함께 외교의 문도 열었다. 베트남은 캄보디아에서 철군하고 중국과 관계를 정상화했으며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과 수교했다. 1995년에는 아세안에 가입하면서 동남아시아 경제권에 본격적으로 편입됐다. 이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글로벌 기업의 투자가 이어지면서 베트남은 세계 공급망의 주요 생산기지로 성장했다.
그러나 도이모이의 성공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다.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한 높은 의존도, 국내 기업의 낮은 기술력, 숙련 인력 부족과 인프라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저임금 노동력과 외자 유치에 의존한 성장모델만으로는 선진국 진입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도이모이가 주는 교훈은 경제체제의 이름보다 현실에서 국민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있다. 통일 이후의 경제적 실패를 인정하고 시장과 세계를 받아들인 선택이 오늘날 베트남의 성장 기반이 됐다.
도이모이가 베트남 경제의 ‘1막’을 열었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기술혁신과 인재 육성, 국내 기업의 경쟁력 강화다. 베트남은 지금 ‘세계의 공장’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스스로 기술과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경제로의 전환이라는 새로운 시험대에 서 있다.
송덕호
본 내용은 저자의 허락으로 오이마켓 편집국이 축약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