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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이 바꾼 역사와 문화

<제44화> 여덟 명의 배신자가 만든 계곡 — 실패에 투자하는 돈

임윤철 · 2026.09.30

<제44화> 여덟 명의 배신자가 만든 계곡 — 실패에 투자하는 돈

성공한 스타트업 뒤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돈을 댄 투자자가 있습니다. 대부분 실패할 걸 알면서도 미래에 거는 이 돈은 어디서 시작됐을까요. 실리콘밸리라는 이름이 태어난 순간으로 가 보겠습니다. 1957년 미국 캘리포니아입니다.

한 천재 과학자가 세운 반도체 연구소에, 재능 넘치는 젊은 연구원 여덟 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천재는 사람을 다룰 줄 몰랐습니다. 직원들을 의심하고 몰아세우자, 참다못한 여덟 명이 함께 사표를 던졌습니다. 세상은 이들을 배신자 여덟 명이라 불렀습니다. 문제는 돈이었습니다.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회사를 차릴 자본이 없었죠. 그때 셔먼 페어차일드라는 사업가가 나타나, 이 젊은이들의 머릿속 기술 하나만 보고 투자를 결정합니다. 그렇게 태어난 페어차일드 반도체는 훗날 실리콘밸리의 씨앗이 됐고, 이 여덟 명과 그 후예들이 세운 회사가 수십 개에 이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거대 반도체 기업들의 뿌리가 여기 있습니다. 검증된 담보도, 매출도 없이 오직 사람과 아이디어에 건 돈이 한 시대를 연 것입니다.

방금 보신 장면은 실리콘밸리 초기의 역사를 근거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렇게 아직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은 기술과 사람에게 위험을 무릅쓰고 대는 돈을, 우리는 벤처 캐피털이라 부릅니다. 그 원리는 보통의 상식과 정반대입니다. 벤처 투자자는 열 곳에 투자하면 그중 예닐곱은 실패할 것을 처음부터 각오합니다. 그러나 한두 곳이 크게 성공해 수십 배, 수백 배로 돌아오면, 그 하나가 나머지 모든 실패를 갚고도 남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비용으로 계산에 넣은 것입니다. 그래서 벤처 캐피털은 안전한 곳이 아니라 위험하지만 세상을 바꿀 만한 곳을 일부러 찾아다닙니다. 프롤로그에서 말한, 죽음의 계곡을 건너게 해줄 위험을 함께 지는 투자가 바로 이것입니다.

자, 오늘의 결론입니다. 기술은 세상의 장면과 장면을 바꿉니다. 담보가 있어야만 돈을 빌려주던 장면은, 담보도 매출도 없이 사람과 미래에 거는 장면으로 바뀌었습니다. 벤처 캐피털의 본질은 위험의 재해석입니다. 위험을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나눠 지고 관리할 것으로 보는 순간, 아무도 돈을 대지 않던 곳에 자본이 흐르고 새로운 기술이 시장으로 나옵니다. 이 시리즈의 프롤로그가 지적한 우리의 약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화살은 많지만, 그 화살이 계곡을 건너도록 위험을 함께 져줄 자본과 그것을 다루는 안목이 부족한 것입니다. "너는 뭐 먹고 살거니?"의 마흔네 번째 힌트는 이것, 남들이 위험하다고 피하는 곳에서 될 만한 하나를 알아보는 눈이 가장 값진 자산이라는 것입니다. 철이네 오이마켓이 다음 장면으로 안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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