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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컬럼] 자본이 질주하는 시대-한국의 생존 방정식

곽재원 · 2026.10.09

[곽재원 컬럼] 자본이 질주하는 시대-한국의 생존 방정식

자본이 '비트'에서 '와트'로 달아나고 있다. 20년간 소프트웨어 중심의 경량 자본주의 시대가 끝나고, 전력 인프라를 쥔 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무거운 자본주의의 시대가 왔다는 뜻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스리마일섬 원전을 살리고, 아마존과 구글은 소형모듈원전에 투자한다. 초지능을 향한 알고리즘은 거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 하나가 소국의 연간 전력 소비에 맞먹는다.

이제 빅테크의 욕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미중 기술 냉전이라는 또 다른 엔진이 작동 중이다. 미국은 반도체법 보조금과 함께 관세로 생산기지를 끌어들이고, 일본은 라피더스 중심의 민관 합동 체제로, EU는 국부펀드로 '소버린 AI' 인프라를 짓는다. 자본은 이제 안보의 논리에 동원되는 징집병 신세다.

한국의 자화상은 명암이 뚜렷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 실적이 지수를 떠받치니 당당해 보이지만, 착시일 뿐이다. 반도체의 이익은 국내 생태계로 번지지 않는다. 전통 제조업은 실적 부진과 고금리에 신음한다. 지수의 온도와 서민 경제의 체감 온도는 정반대다. 더 치명적인 것은 전력이다. AI 패권의 본질이 '와트의 확보'라면, 한국은 가장 취약한 고리를 안고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수 기가와트가 필요하지만 송전선로는 주민 갈등과 정치에 막혀 있다. 전력망특별법은 통과했으나 속도는 여전히 더디다. 원전 생태계 복원은 갈 길이 멀고, 재생에너지는 간헐성을 못 이긴다. 비트를 만들 공장은 짓겠다면서 와트를 실어 나를 혈관은 막혀 있다. 미국이나 중동처럼 현금을 쏟아부을 수도 없다. 저출산·고령화로 의무지출은 늘고 세수 기반은 약해진다.

그렇다면 한국의 생존 방정식은?

첫째, 보조금 경쟁을 버리고 '인프라 국가'가 돼야 한다. 기업이 선택하는 기준은 이제 세금이 아니라 안정적 전력 공급이다. 송배전망과 SMR·차세대 원전은 정쟁의 대상이 아니라 1순위 안보 과제다. 인허가 기간을 절반으로 줄이는 범정부 패스트트랙이 필요하다.

둘째, 부동산에 묶인 돈을 국가 인프라 펀드로 돌려야 한다. 퇴직연금과 국민연금이 데이터센터와 원전, 송전망에 투자하도록 과감한 세제 혜택을 줘야 한다.

셋째, 부품 공급자를 넘어 '버티컬 AI 강국'이 돼야 한다. 조선·방산·자동차·정밀화학에 AI를 결합해 물리적 AI와 로보틱스의 독자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넷째, 덴마크식 유연안정성으로 사회적 타협을 만들고 인재를 붙잡아야 한다. 증발하는 중간 일자리와 불평등 심화가 혁신 동력을 꺼뜨린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항상 기술과 자본의 결합으로 굴러왔다. 낡은 관행과 진영 논리에 갇힌 나라에 남는 것은 기술 예속과 낙오뿐이다. 전력이 국력이 되고 연산력이 주권이 되는 시대, 한국호를 문명 전환의 궤도에 올려놓을 결단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출처 : 저스트이코노믹스

링크 : https://www.justeconomix.com/ko-kr/articles/153563

본 내용은 저자의 허락으로 오이마켓 편집국이 축약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