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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칼럼] 왜 상장기업들은 이사 수를 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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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지배구조를 둘러싼 힘겨루기가 본격화됐다. 지난 9월 10일부터 자산총액 2조 원 이상 상장사는 정관으로 집중투표제를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대주주가 사실상 독점해 온 이사회에 소수주주가 추천한 이사가 들어갈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런데 올해 3월 정기주총에서 일부 대기업이 이사 정원을 줄이고 임기를 분산하는 정관 변경에 나서면서, 제도의 효과를 약화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집중투표제는 여러 명의 이사를 뽑을 때 주주가 선임할 이사 수만큼의 의결권을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는 제도다. 예컨대 대주주 60%, 소수주주 40%인 회사에서 이사 3명을 뽑는다면, 발행주식 100주 기준으로 대주주는 180표, 소수주주는 120표를 갖는다. 소수주주가 120표를 한 후보에게 몰아주면 대주주가 표를 아무리 나눠 던져도 소수주주 추천 이사 1명은 선임이 보장된다. 이사회는 투자와 사업 방향, 경영진 선임과 감독을 맡는 핵심 기구이기에, 이 제도는 지배주주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장치로 평가된다.
1998년 도입된 집중투표제는 그간 실효성이 낮았다. 채택 상장사는 전체의 4.4%, 자산 2조 원 이상 기업도 9.5%에 그쳤는데, 배제 조항만 넣으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개정 상법 시행으로 이 허점이 메워졌지만, 지분 1% 이상 주주의 직접 청구가 있어야 작동한다는 한계가 남아 있어 기업들은 영향력을 줄일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핵심은 이사 정원과 임기다. 한 번에 뽑는 이사가 많을수록 소수주주가 이사 1명을 선임하기 위해 필요한 지분이 낮아진다. 이사 3명이면 25%, 4명이면 20%를 넘어야 하지만, 이사 수를 줄이거나 임기 만료 시점을 분산하면 그 문턱이 올라간다. 올해 3월 50대 그룹 상장사 269곳의 이사 수는 전년보다 47명 줄었고, 이사 수 상한을 조정하는 안건은 15곳, 임기 규정 변경 안건은 14곳에서 나왔다. 한화 계열사 7곳의 임기 규정 변경과 삼성전자의 '3년'을 '3년 이내'로 바꾼 조치가 대표적인데, 시장에서는 이를 '시차임기제(Staggered Board)' 도입으로 해석한다.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원안대로 통과된 점이 논란을 키웠다.
시차임기제 자체가 나쁜 제도는 아니다. 경영 연속성과 이사회 효율성을 위해 임기를 조정하는 것은 정당할 수 있다. 문제는 집중투표제 의무화 시점과 맞물려 이런 변화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적대적 인수를 막는 방어 수단으로 쓰여 정당성 논란이 이어졌고, 영국은 매년 이사 전원을 재선임하도록 권고해 주주 견제를 강화했다. 제도의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이사회가 지배주주로부터 얼마나 독립적으로 움직이느냐다.
고려아연 사례는 이 제도가 경영권 분쟁에서 견제의 장치이자 방어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작년 1월 고려아연은 소수주주 보호와 이사회 독립성 강화를 목적으로 집중투표제 도입을 추진했고, 영풍·MBK 측의 가처분으로 해당 주총에서는 집중투표 선임이 막혔지만 정관 변경안은 통과됐다. 이후 올해 9월 임시주총에서 중도 사임한 독립이사 4명을 집중투표로 뽑았을 때는 양측이 2명씩만 후보를 내 2석씩 나눠 가졌다. 제도가 지분 구조에 따른 전략적 수단으로 진화했다는 뜻이다.
집중투표제는 경영권을 위협하는 제도가 아니라 지배주주의 이사회 독점을 깨고 전체 주주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장치다. 행동주의 펀드의 단기 이익 추구나 내부 갈등에 따른 효율 저하 우려도 있지만, 그것이 지배주주의 독점을 정당화하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 기업이 고민해야 할 것은 제도를 우회하는 법률적 꼼수가 아니라 자사 후보의 당위성을 주주에게 설득하는 능력이다. 이 제도의 성패는 소수주주 추천 이사의 선임 여부가 아니라 이사회의 진정한 독립 운영과 경영진에 대한 건전한 견제에 달려 있다. 권력투쟁의 끝에서 물어야 할 질문은 누가 이겼느냐가 아니라, 이사회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느냐다.
출처 : 머니투데이
링크 : https://www.mt.co.kr/opinion/2026/10/13/2026101209454614544
본 내용은 저자의 허락으로 오이마켓 편집국이 축약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