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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철 칼럼] 성장의 엔진이 걸림돌이 될 때: 사일로를 넘어 연결의 혁신으로

임윤철 발행인 · 2026.11.05

[임윤철 칼럼] 성장의 엔진이 걸림돌이 될 때: 사일로를 넘어 연결의 혁신으로

대한민국 산업 체질을 지배해 온 핵심 동인은 명실상부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이었다. 명확하게 정해진 목표를 향해 기민하게 달리고, 각 부문이 철저히 분업화된 사일로(Silo) 형태의 조직 구조는 전례 없는 압축 성장을 이루어낸 견인차였다. 고도성장기라는 한정된 트랙 위에서 위계적 의사결정과 강고한 조직의 칸막이는 최고 수준의 실행력과 수직적 효율성을 보장하는 강력한 통제 기구이자 추진력 그 자체였다.

그러나 기술과 산업의 중심축이 물리적 자산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데이터, 그리고 인공지능(AI) 기반의 '뉴 이코노미'로 급격히 이동하는 지금, 우리가 자랑해 온 성장의 엔진은 역설적으로 혁신을 막아서는 가장 거대한 걸림돌이 되었다. 사일로 구조는 명확한 과제를 신속히 처리하는 데에는 최적화되어 있지만, 전방위적 융합과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연결의 시대에는 심각한 병목을 유발한다. 부서 간, 산업 간의 경계에 갇힌 채 자신들의 정체성과 이익만을 고수하는 문화는 시장의 급변하는 미세 신호를 파편화하고 왜곡한다.

오늘날 경쟁력의 핵심은 더 이상 독점적 자산이나 수직 통합된 규모에 있지 않다. 수많은 플레이어가 네트워크 안에서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생태계를 확장하는 '연결의 힘'에 있다. 연결을 통해 성장하는 시장에서는 결코 단일 조직의 뛰어난 능력만으로 독주할 수 없다. 유연한 소통 구조와 오픈 이노베이션, 그리고 부문 간의 허물없는 협업만이 새로운 가치 창출의 전제 조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직적 패스트 팔로워 문화에 익숙한 조직들은 여전히 과거의 단절된 접근 방식을 고수하며 외부와의 연결을 경계하고 내부 쇄신에 주저한다.

진정한 체질 개선은 단지 최신 기술이나 시스템을 도입하는 선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지난 성공을 가능하게 했던 유산이자 관성인 사일로를 과감히 깨부수고, 서로 다른 역량과 시각이 끊임없이 교차할 수 있는 유연한 '연결의 구조'를 재설계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성장을 이끌었던 유산이 미래의 발목을 잡는 '성장의 역설'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어떠한 신기술도 조직의 도약으로 이어질 수 없다. 오래된 성장의 엔진이 완전히 멈춰 서기 전, 경계를 허물고 연결의 혁신으로 나아가는 과감한 구조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