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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배터리 전력 ‘거래’ 길 연다…정부, V2G 제도 손질 착수

정부가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전기차 배터리에 저장된 전기를 전력망에 되팔 수 있도록 제도 개선에 착수했다. 핵심은 전기차를 ‘움직이는 저장장치’로 보고, 전력거래의 법적 지위와 정산·요금체계를 손보는 일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분산에너지특화지역(분산특구) 이행 추진단’ 회의를 열고 저장전기판매사업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분산특구는 수요지 인근에서 전기를 생산·소비하는 ‘지산지소형’ 체계를 시험하는 지역으로, 부산·전남·제주·경기 의왕·경북 포항·울산·충남 서산 등 7곳이 지정돼 있다.
정부가 예고한 제도 손질의 첫 축은 ‘책임공급비율’ 완화다. 현행 규정은 분산에너지사업자가 계약한 전력 수요의 70%를 자체 발전으로 충당하도록 요구한다. 하지만 전기차 배터리 기반의 저장전기판매사업은 자체 발전이 구조적으로 어렵다. 정부는 이 비율을 “합리적으로 적용”하는 방향으로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둘째 축은 전력 조달 경로 확대다. 지금은 부족 전력을 사실상 한국전력에서만 살 수 있었는데, 정부는 전력시장에서도 구매할 수 있게 세부 규정 마련을 추진한다. 전기차가 낮 시간대 태양광 잉여 전기를 저장했다가 수요가 높은 시간에 방전해 공급하더라도, 운영 과정에서 생기는 ‘부족분’을 시장에서 메울 수 있어야 사업이 돌아간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셋째는 전기차 배터리의 ‘자원 인정’ 문제다. 정부는 전기차 배터리를 ESS 같은 보조자원으로 인정하는 방안과, 현재 진행 중인 규제특례 실증을 토대로 전기차의 전력 거래 제도개선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V2G(양방향 충·방전)는 전기차를 충전기에 연결한 채 필요할 때 전력망에 역송전해 판매하는 방식이다.
다만 ‘거래 허용’만으로 시장이 열리진 않는다. 첫째 과제는 정산과 요금 설계다. 누구 전기를, 어떤 시간대에, 어떤 단가로 사들이고(또는 판매를 중개하고), 계통 기여도에 따라 어떤 추가 보상을 줄지 기준이 없으면 참여 유인이 떨어진다. 정부도 별도 요금·정산 체계 구축과 전기사업법 정비 필요성을 언급했지만, 이해관계가 촘촘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는 소비자 보호와 책임 소재다. 잦은 충·방전이 배터리 수명과 보증 조건에 미치는 영향, 방전 중 사고 발생 시 책임(차주·충전사업자·중개사업자·계통운영기관)을 어디에 둘지부터 정리돼야 한다. ‘전기 팔아 수익’이라는 홍보가 앞서면, 비용과 위험이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구조가 될 수 있다.
셋째는 표준·보안·계통 안정성이다. 충전기와 차량 간 통신 표준, 계량(미터링) 정확도, 원격 제어에 따른 사이버보안 기준이 미비하면 대규모 참여가 오히려 계통 리스크로 돌아올 수 있다. 특히 분산자원은 ‘많이 붙을수록’ 관리 복잡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전문가들은 단계적 확산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부가 실증특례를 ‘규모’가 아니라 ‘규칙’ 중심으로 전환해, ▲표준화된 계약서(수익 배분·손해 배상·중도 해지) ▲배터리 열화에 대한 최소 보상 가이드라인 ▲독립적인 계량·정산 검증 체계 ▲중개사업자(집합자원) 등록·감독 기준을 먼저 확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차를 계통 유연성 자원으로 쓰려면 “참여자가 손해 보지 않는 구조”가 전제라는 뜻이다.
정부는 분기별 추진단 회의로 특구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추가 제도개선 과제를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전기차 배터리 전력 거래는 재생에너지 확대의 ‘숨은 비용’인 유연성 문제를 줄일 수 있는 카드다. 동시에 제도 설계가 부실하면 소비자 피해와 계통 불안을 키울 수 있다. 성패는 실증의 숫자가 아니라, 요금·정산·책임·표준을 얼마나 빨리, 얼마나 정교하게 확정하느냐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