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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과 혼종이 혁신과 창조를 낳는다

이희용 · 2024.01.22

개방과 혼종이 혁신과 창조를 낳는다

'도시와 창조계급',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 등의 저서를 펴낸 캐나다 토론토대의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는 '경제 발전의 3T 이론'을 창안했다. 관용(Tolerance)이 높은 지역에 인재(Talent)가 모여들어 기술(Technology)이 발전한다는 것이다.

그가 이끄는 토론토대 마틴경제발전연구소는 2015년 각국의 3T 정도를 점수로 매겨 종합한 글로벌창의성지수(GCI)를 발표했다. 호주·미국·뉴질랜드·캐나다·덴마크·핀란드·스웨덴 등이 상위권에 포함됐고,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유일하게 10위권에 들었다.

한국과 이스라엘은 기술 부문에서 각각 1위와 3위를 차지했음에도 관용 점수가 70위와 93위에 머물러 종합순위가 31위와 30위에 랭크됐다. 기술 부문 2위인 일본도 종합순위는 24위에 그쳤고, 중국은 100위권 밖이었다.

IT(정보기술) 혁명을 주도한 실리콘밸리가 미국에서도 가장 개방적인 도시 샌프란시스코 외곽에 자리 잡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츈(Fortune)’이 해마다 뽑는 500대 기업 가운데서도 40% 이상이 이민자 1세나 2세에 의해 설립됐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아버지는 시리아 이민자였고, 구글 공동설립자 세르게이 브린은 러시아 출신이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난 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은 남아공·미국·캐나다 삼중국적을 갖고 있다.

아마존 왕국을 세운 제프 베이조스는 부모가 미국인이었으나 두 돌도 되기 전에 어머니가 쿠바 출신 이민자와 재혼해 다문화가정에서 자랐다. 구글의 CEO 순다르 피차이와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는 인도에서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해 정착했다.

3T 이론을 입증하는 실제 사례나 연구 결과는 차고도 넘친다. 미국 미시간대의 스콧 페이지 교수는 "덜 똑똑하지만 다양한 사람으로 이뤄진 집단이 똑똑한 사람들로 구성된 동질적인 집단보다 더 높은 성과를 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집단의 오류는 평균 오류에서 다양성을 뺀 것"이라는 법칙도 제시하며 "다양성이 증가할수록 사회의 오류를 줄일 수 있다"고 역설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그레그 재커리는 저서 '세계인으로서의 나'에서 "다양성은 나라의 건강과 부를 결정 짓는다"면서 "이제 혼합은 새로운 표준이며 창의성을 북돋고 경제성장을 촉진한다"고 강조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20년 동안 디즈니를 이끈 마이클 아이즈너도 "다양성은 창의성을 향한 강력한 힘"이라고 단언했다.

혁신과 창조가 다양성과 혼종(혼합)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고대인들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유전적으로도 동종교배를 거듭하면 환경 변화에 취약해지고, 이종교배가 면역력과 경쟁력을 높인다.

고대 페르시아와 로마제국, 인도 마가다왕국, 중국 당나라 등은 개방과 포용으로 다양성을 높여 부국강병과 문화융성을 이룬 대표적 사례다. 20세기 이후에는 미국이 전 세계의 인재를 불랙홀처럼 빨아들이며 과학과 산업을 발전시켰고, 지금도 디지털 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국토가 넓고 인구가 많은 나라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성공 사례가 있다. 17~18세기 유럽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찾아 이민자들이 몰려든 네덜란드가 강소국으로 부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개방국가를 지향한 고려 시대에 청자·불화·인쇄 등 세계적인 한류 문화를 꽃피웠다.

이제는 발상을 바꿔보자. 이민과 다문화를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현상이나 불가피한 인구절벽의 대안으로만 여길 게 아니라 미래를 위한 적극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동서고금의 역사가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