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기회
퇴근길 주식 거래의 시대... 한국거래소 애프터마켓 14일 개장

한국의 주식시장이 변한다. 지난 50년 가까이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로 고정돼온 거래시간의 벽이 무너진다. 14일부터 한국거래소(KRX)가 정규장 종료 후 오후 4시부터 밤 8시까지 '애프터마켓(After-Market)'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직장인들은 퇴근 후에도 주식을 거래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단순한 거래시간 연장을 넘어 투자 문화와 시장 구조에 영향을 미칠 역사적 변화다.
애프터마켓은 미국, 유럽 등 선진 금융시장에서 오래전부터 운영해온 제도다. 미국의 경우 정규장 종료 후 오후 4시부터 밤 8시까지, 중국은 오후 3시부터 밤 11시까지 장외거래 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도 글로벌 기준에 발맞추기 위해 이번 결정을 내렸다. 당초 거래소는 오전 7시부터 8시까지 '프리마켓(Pre-Market)'을 함께 개설할 계획이었으나, 증권업계의 전산 부담과 노동계 반발로 프리마켓은 2027년 말로 연기했다. 대신 애프터마켓만 예정대로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애프터마켓의 가장 큰 의의는 근로자의 투자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인다는 데 있다. 기존 정규장 시간은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업무를 해야 할 시간과 겹쳤다. 특히 9시부터 3시 30분까지는 외출이 어려운 사무직 근로자들의 주식 거래가 실질적으로 제약받았다. 애프터마켓 도입으로 퇴근 후 여유 시간에 주식을 매매할 수 있게 되면서, 서민 투자자의 시장 참여 기회가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개인투자자의 시장 참여도 증가로 이어져 시장 유동성 제고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거래 방식은 정규장과 유사하면서도 차별화된 특징을 갖고 있다. 애프터마켓에서는 정규장처럼 실시간으로 호가가 형성되고 거래가 체결되는 호가 거래 방식이 적용된다. 다만 거래량이 정규장 대비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으므로 매수매도 간 호가 간격이 더 클 가능성이 있다. 결과적으로 개별 주식의 가격 형성이 정규장보다 다소 덜 효율적일 수 있다는 점은 투자자가 유의해야 할 부분이다.
한편 거래 대상 종목과 관련해 흥미로운 변화가 있었다. 당초 거래소는 ETF와 ETN도 애프터마켓에서 거래 가능하도록 계획했으나,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주식만 거래 대상으로 한정했다. ETF와 ETN을 포함한 상장지수상품(ETP)은 애프터마켓에서 거래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또한 시간외 대량매매의 거래 기준이 완화되어 1주 이상이면 거래 가능하도록 조정되었다. 이는 더 많은 투자자가 애프터마켓에 접근하도록 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애프터마켓 도입은 증권업계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거래량 증대에 따른 유동성공급자(LP)의 역할 확대, 애프터 타임대에 특화된 거래 전략 개발 필요성, 그리고 증권사 전산 시스템의 추가 부담이 불가피하다. 특히 해외투자자들의 야간 거래 참여가 증가하면서 국제 거래 흐름에도 변수가 생길 수 있다.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애프터마켓의 중장기 효과에 대해 엇갈린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긍정적으로는 시장 효율성 증대와 개인투자자 참여 확대를 통한 시장 민주화 효과를 기대한다. 반면 부정적으로는 장외거래 특성상 정규장 대비 낮은 투명성,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개인투자자 피해 가능성, 그리고 장시간 거래로 인한 투자자 심리 불안정 등을 우려한다.
거래소의 24시간 거래 시대 진입을 향한 첫 발걸음이 시작된다. 애프터마켓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안착하느냐에 따라 향후 프리마켓과 추가적인 거래시간 연장 계획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주식시장이 글로벌 기준의 거래시간 경쟁력을 갖추는 과정, 그 시작은 바로 오후 4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