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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은 최초의 다문화가정 자녀

이희용 · 2024.02.06

단군은 최초의 다문화가정 자녀

한민족은 단군의 후손을 자처한다. 동화나 동요에서도 그를 단군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현존하는 단군에 관한 기록 가운데 가장 오래된 삼국유사는 단군 탄생 과정을 이렇게 적어놓았다.

“옛날에 환인의 아들 환웅은 천하에 뜻을 두어 인간 세상을 구하기를 탐냈다. 환인은 천부인 세 개를 주며 그곳을 다스리도록 했다. 환웅은 무리 3천 명을 이끌고 태백산정의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으니 그곳을 신시라 불렀다. (중략) 환웅은 곰에서 사람으로 변한 웅녀와 혼인해 아들 단군왕검을 낳았다. 단군은 기원전 2333년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고 칭했다.”

주목할 대목은 환웅이 내려오기 전에 이미 인간이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환웅은 무리 3천 명도 이끌고 왔다. 실제 단군의 후손은 고조선 왕족의 혈통을 이어받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이전부터 살던 백성과 환웅이 이끌고 온 무리의 후손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인 추론일 것이다. 단군은 아브라함처럼 혈통의 조상이 아니라 한반도 최초의 국가 고조선의 건국 시조일 뿐이다.

학자들은 단군과 웅녀의 결혼을 두고 천신(天神)을 믿는 무리와 곰을 숭배하는 부족의 결합으로 풀이한다. 단군은 기록에 나타난 최초의 다문화가정 자녀다.

고대 사서를 보면 고구려, 부여, 신라, 가야 등의 건국 시조들은 알에서 태어난다. 그 알은 하늘에서 내려오기도 하고 백마가 낳기도 하고 나무 위 궤짝이나 배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난생설화는 한국 고대사의 큰 특징으로 농경문화와 관련이 깊다. 알은 씨앗이라는 말로도 쓰이며 신성함을 뜻한다. 학자들은 북방에서 내려온 유목 이주민 집단이 농경 선주민과 결합해 고대국가의 토대를 이뤘음을 말해준다고 해석한다.

가야 개국 왕이자 김해 김씨의 시조 수로왕은 아유타국(인도)의 공주 허황옥을 왕비로 맞았다. 기록상 우리나라 최초의 결혼이주 여성인 셈이다. 이들 부부는 아들 10명을 낳았는데, 이 가운데 2명에게 어머니의 성(김해 허씨)을 주었다. 그래서 지금도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는 서로 혼인하지 않는 전통을 지키고 있다.

부족 간 결합을 통해 한민족이 형성됐음을 은유하는 고대국가의 건국 신화는 현대 과학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게놈연구소는 국제공동조사단을 구성해 두만강 북부 러시아 동단의 '악마의 문 동굴'에서 발견된 7천700년 전 동아시아인의 게놈(유전체)을 슈퍼컴퓨터로 분석한 결과를 2017년 발표했다.

'악마의 문 동굴'은 고구려·동부여·북옥저가 자리 잡았던 지역이다. 1973년 이곳에서 신석기 시대 인류의 유골이 발견됐다. 이들은 오늘날 한국인처럼 갈색 눈과 삽 모양 앞니를 지닌 수렵채취인으로 밝혀졌다.

우유를 잘 소화하지 못하고, 고혈압에 약하고, 몸 냄새가 적고, 귓밥이 마른 유전적 특징이 인근에 사는 원주민 울치족을 제외하면 한국인과 가장 가깝다고 한다. 모계로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게놈 종류도 한국인이 주로 가진 것과 일치해 모계가 똑같은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단은 악마의 문 동굴인과 아시아 50여 인종의 게놈 변이를 비교해 현대 한국인의 민족 기원과 구성을 계산했다. 동굴인과 현대 베트남·대만에 고립된 원주민의 게놈을 융합할 경우 한국인의 특성에 가장 가깝게 나타났다. 수천 년간 북방계와 남방계 아시아인이 뒤섞이면서 한반도의 조상을 형성한 것이다.

현대 한국인은 북방계와 남방계가 혼합된 흔적을 분명히 지니고 있으면서도 유전적 구성은 남방계 아시아인에 가깝다. 수렵·채집이나 유목 생활을 하던 북방계보다는 정착해 농사를 짓던 남방계가 더 많은 자식을 낳아 빠르게 확산했기 때문이다.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라 해도 좋을 만큼 민족의 동일성이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다른 모든 민족이 그렇듯이 다문화적 결합을 거쳐 원형이 만들어졌다. 이는 민족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흠결이 아니라 지금까지 한민족이 살아남은 비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