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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 장군은 진짜 바보였을까?

이희용 · 2024.02.13

온달 장군은 진짜 바보였을까?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결혼 이야기는 신데렐라 스토리만큼이나 허무맹랑하고 극적이다. 그래서 전래동화나 민간설화로 여기기 십상이지만 엄연히 정사에 나타난 기록이다.

삼국사기에 온달을 묘사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얼굴이 파리하고 우스꽝스럽게 생겼으나 마음은 맑고 밝았다. 집이 무척 가난해 먹을 것을 빌어 어미를 봉양했다. 찢어진 옷과 해진 신발로 거리를 왕래하니 사람들이 바보 온달이라 불렀다. 평원왕은 울기를 잘하는 어린 딸에게 ‘바보 온달에게나 시집을 보내야겠다’고 놀렸다.”

잘 알려진 대로 평강공주는 왕이 농담으로 입버릇처럼 한 말을 따르겠다며 궁을 나가 온달과 결혼한다. 온달은 공주의 도움으로 비루먹은 말을 사서 훌륭하게 키우고 무예를 연마한다. 사냥대회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 장군으로 발탁된 뒤 여러 전투에서 무공을 세운다.

온달이 정말 바보였다면 과연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역사학자들은 온달을 하급 귀족이나 몰락 귀족의 후예로 보기도 한다. 연세대 지배선 교수는 2011년 주목할 만한 논문을 발표했다. 서역인의 핏줄이 섞인 다문화가정 자녀였을 것이라는 학설이다.

그는 온달의 생김새가 특이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바보로 놀림을 받은 것도 지능이 모자라는 게 아니라 말이 어눌하고 신분이 낮아 ‘왕따’를 당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서에 어머니에 대한 언급만 등장하고 아버지에 관한 기록이 없는 것은 어머니가 고구려인이고 아버지가 최하층민인 이방인일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한다.

온달은 우리나라에 5천여 명밖에 없는 희성인 봉성 온(溫)씨의 시조다. 삼국사기에도 온씨는 온달 한 명만 등장하는데, 중국 사서를 보면 고대 강국(康國) 왕의 성이 온씨다.

강국은 페르시아계 소그드인이 세운 사마르칸트(현 우즈베키스탄)를 일컫는다. 소그드인은 3세기에서 8세기까지 동서양의 실크로드 무역을 주도했다. 이들의 후손이 많이 사는 러시아의 투바 자치공화국에는 온다르란 이름이 흔하다고 한다.

지 교수는 “대당서역기를 보면 강국 사람은 말을 잘 타고 용맹할 뿐 아니라 어려서부터 상술을 배우느라 타국으로 여행을 많이 했다”면서 “온달은 강국인의 기질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온달 장군의 뿌리가 서역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고대에도 물자와 사람의 교류가 활발했고, 6세기 고구려가 무관 등용에 개방적인 태도를 취했음을 말해준다.

상인과 함께 외국과의 교류에 앞장서는 집단으로 종교인을 꼽을 수 있다. 중국 전진의 순도는 372년 소수림왕 때 불경과 불상을 갖고 고구려에 들어왔다. 백제에 불교를 전파한 마라난타는 인도 북부 간다라국 출신으로 중국 동진을 거쳐 384년 침류왕 때 백제로 건너왔다.

신라에는 5세기 눌지왕 때 고구려에서 들어온 묵호자(墨胡子)가 불법을 처음 알렸다. 묵호자는 승려의 법명이 아니라 ‘얼굴이 검은 사람’이란 뜻의 별칭이다. 그 역시 인도인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에서 선불교를 창시한 달마 대사는 남인도 향지국의 셋째 왕자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얼굴 모습은 텁수룩한 수염과 부리부리한 눈망울로 특징지워진다.

9년간 눕지 않고 면벽수련을 하다 보니 수염은 자연스럽게 길렀고, 수행 도중 잠이 쏟아지니 아예 눈을 감을 수 없도록 눈꺼풀을 잘라버렸다. 눈꺼풀을 던져버린 곳에서 차나무가 자라 찻잎이 졸음을 쫓는 용도로 쓰인다고 한다. 당시 중국인들이 보기에 이색적인 그의 용모가 이런 전설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인지 달마의 형상을 그린 달마도는 선승들의 수행용이나 선비들의 감상용을 뛰어넘어 화를 쫓고 복을 부르는 일종의 부적처럼 활용되는가 하면 최근에는 지하의 수맥을 차단하는 용도로도 쓰이고 있다. 1,500년 전 인도에서 동쪽으로 간 달마가 오늘날 이 모습을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