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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사위가 된 베트남 왕자 이용상

이희용 · 2024.03.12

고려의 사위가 된 베트남 왕자 이용상

우리나라 결혼이민자 17만5,653명을 국적별로 보면 중국이 가장 많지만 이른바 조선족 동포(한국계)를 빼면 베트남이 4만242명(22.9%)으로 1위다(2024년 1월 법무부 통계월보). 다문화 학생의 부모 출신국도 베트남이 5만8,136명(32.1%)으로 중국(한국계 제외)을 뛰어넘었다(2023년 교육기본통계). “베트남은 사돈의 나라”라고 하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양국 간 무역 규모는 지난해 794억3,000만 달러로 일본을 제치고 2년 연속 중국·미국에 이어 3위를 차지했으며(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시스템), 2018~2023년 베트남에 대한 국가별 투자액도 한국이 단연 1위다(베트남 기획투자부).

우리나라와 베트남이 이처럼 가까워진 것은 1992년 수교 이후 근래의 일이지만 두 나라의 인연은 8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트남 최초의 독립왕국은 1009년 리콩우언(李公蘊·이공온)이 세운 리(李) 왕조다. 8대에 걸쳐 217년을 이어오다가 쩐(陳) 왕조에 의해 멸망한다. 새 왕조는 망국의 왕족을 모조리 잡아 죽였다.

리왕조 6대왕 영종의 일곱째 왕자이자 마지막 8대왕 혜종의 숙부인 리롱뜨엉(李龍祥·이용상)은 중국 송나라를 거쳐 고려의 황해도 옹진반도로 망명했다. 그는 몽골군이 쳐들어오자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토성을 쌓아 적을 물리쳤다. 고종은 지금의 황해도 금천군인 화산 땅을 식읍으로 내려주고 고려 여인과 결혼시킨 뒤 화산군(花山君)으로 봉했다.

그의 둘째아들 이일청은 안동부사로 부임해 후손들이 경북 봉화에 집성촌을 이뤘다. 그곳에는 임진왜란 때 전사한 이용상 14세손 이장발을 기리는 충효당과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화산 이씨 족보에는 리 왕조 태조(이공온)가 시조, 7세손인 이용상이 중시조로 기록돼 있다. 현재 화산 이 씨는 국내에 1천800명가량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왕조 멸망 후 769년이 흐른 1995년, 이용상의 26대손인 이창근 씨는 베트남 정부 초청을 받아 종친회 간부들과 함께 선조의 고향을 방문했다. 그는 2000년 가족을 이끌고 베트남으로 이주한 뒤 2010년 베트남 국적을 얻었으며 2017년부터 베트남 관광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화산 이씨 종친회 간부들은 해마다 리 왕조 태조가 등극한 음력 3월 15일에 맞춰 베트남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봉화군과 베트남 뜨선시는 2018년 우호 협약에 이어 2023년 자매결연 협약에 서명해 교류·협력에 나서고 있으며, 봉화군과 뜨선시가 속한 경북도와 박닌성도 지난해 말 포괄적 협력에 관한 MOU를 체결했다.

1687년(숙종 13년) 제주목 관리 김대황은 조정에 진상할 말을 싣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 베트남의 호이안 근처에 표착했다. 안남국왕은 조선인임을 알고 중국 상선에 쌀과 돈을 주어 송환을 도왔고, 일행 24명 가운데 21명이 살아서 돌아왔다(김대황 표해일록). 이후로도 조선인이 베트남까지 표류했다가 생환했다는 기록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오늘날 베트남 국민 가운데서도 당시 그곳에 정착한 조선인의 후예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