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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들이 장난감 가게를 점령했다, 저출생 시대의 새로운 성장동력

정원연 · 2026.05.04

'어른이'들이 장난감 가게를 점령했다, 저출생 시대의 새로운 성장동력

'어린이날'이 이제 '어른이날'로 불리고 있다. 저출생 현상이 심화되면서 과거 어린이와 학용품을 사러 오던 고객들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매운 것은 뜻밖의 고객층이다. 20대부터 40대까지의 성인 키덜트(Kid+Adult)들이 완구 시장의 주력 소비자로 떠오른 것이다. 경제학적 위기로 보일 수 있는 저출생 현상이 역설적으로 새로운 소비 시장을 창출하고 있으며, 서울 창신동 문구거리는 이 변화의 가장 생생한 현장이 되고 있다.

통계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데이터에 따르면 키덜트 시장 규모는 2020년 1조6000억원에서 현재 1조원대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2030세대의 완구 지출이 224% 급증했으며, 40대 남성층도 새로운 소비 주체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 완구는 어린이 선물의 보조적 상품이었다면, 현재는 성인의 스트레스 해소와 자기만족의 주력 소비재가 된 것이다. 레트로 열풍과 IP(지식재산) 상품의 인기로 구매력까지 더해지면서 완구 업계 전체가 새로운 활력을 얻고 있다.

창신동 문구거리의 변화는 이 같은 시장 전환의 축소판이다. 과거 이 거리를 찾던 고객은 주로 학생들과 문구점 사장들이었다. 연필, 노트, 바인더 같은 전통 문구류가 주력 상품이었고, 매출 흐름도 학기 개시철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현장 취재 결과에 따르면 문구보다 장난감이 주력이 되었으며, 피규어, 커스텀 상품, 캐릭터 관련 제품들이 매장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평일 낮 시간대에도 20~40대 성인 고객들로 활기찬 거리의 모습이다.

이 변화로 인한 소매상 간의 명암은 극명하다. 전통 문구류만 취급하는 매장들은 매출 감소를 호소하며 소수의 가게만 남았다. 반면 커스텀 가방, 캐릭터 상품, 희귀 피규어 같은 키덜트 수요를 겨냥한 매장에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는 경제학의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개념을 그대로 보여준다. 기존 비즈니스 모델이 쇠퇴하면서 새로운 가치사슬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볼 때, 키덜트 시장의 성장은 여러 긍정적 신호를 전한다. 첫째, 소비 구조의 다양화다. 저출생으로 인한 유아동 시장의 축소는 경제 전체로는 타격이지만, 키덜트 시장의 부상은 소비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둘째, 여가 산업의 확대다. 완구 소비는 본질적으로 여가와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소비다. 이는 경제가 일정 수준 이상 발전한 사회에서만 나타나는 고급 소비 패턴이다. 셋째, MZ세대의 구매력 증명이다. 2030세대의 완구 지출 급증은 경제적으로 독립한 성인층이 형성되었으며, 그들이 자신의 취향에 투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더 깊은 분석이 필요한 측면도 있다. 키덜트 문화는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보면 '어른이 되지 못한 성인'의 문화로 비판받기도 한다. 하지만 경제학적으로는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일과 생산만을 강요받는 기성세대와 달리, MZ세대는 일-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을 추구하며 자신의 행복을 위한 소비를 정당화한다. 완구 소비는 이러한 삶의 방식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심리적 스트레스 해소와 개인의 취향 표현이라는 가치가 경제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업계 전체적으로도 주목할 점이 있다. 레고, 반디, 매직스트로우 같은 대형 완구 브랜드부터 골목상권 소규모 완구점까지 모두가 키덜트를 공략하고 있다. 마진율을 고려할 때 소수의 고가 구매자보다 다수의 중저가 구매자가 더 수익성이 높다는 판단 때문이다. 창신동에서도 일부 매장은 기존 문구점 개념에서 벗어나 '팝업 스토어' 형식으로 전환하거나,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한 옴니채널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성장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시장 구조의 안정화가 필요하다. 현재는 성장 초기 단계로, 가격 경쟁과 유행 변동에 취약할 수 있다. 또한 키덜트 시장이 저출생으로 인한 '대체재'에 불과할 가능성도 있다. 만약 저출생이 개선되어 어린이 시장이 회복된다면, 현재의 성인 완구 시장도 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업계는 일시적 유행이 아닌 장기적 라이프스타일로 키덜트 문화를 정착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창신동 문구거리의 변화는 한국 경제가 처한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보여준다. 저출생은 분명 경제적 도전이지만, 그것이 곧 시장 축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소비 패턴이 변하고, 새로운 주체가 등장하며, 새로운 가치사슬이 형성될 뿐이다. "어른이들"이 장난감 가게를 점령한 풍경은 슬프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지만, 경제학적으로는 시장이 여전히 살아 있으며, 소비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는 증거다. 키덜트 시장이 1조원대를 유지하고 더 성장한다면, 저출생 시대에도 경제는 새로운 방식으로 적응하고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