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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법 위헌 판정, 미래세대 기후채무로 남은 정책 공백

이청원 · 2026.05.21

탄소중립법 위헌 판정, 미래세대 기후채무로 남은 정책 공백

탄소중립기본법이 2024년 8월 헌법재판소로부터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은 지 9개월이 지났지만, 개정 논의는 여전히 진전 없는 상태다. 헌재는 2031~2049년까지 19년간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한 정량적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위헌으로 선언했다. 이는 아시아 최고법원으로는 처음이자 비유럽 지역 최고법원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획기적인 판정으로, 정부에 2026년 2월까지 법을 개정하도록 명했다.

현재까지의 상황은 정책 공백 상태다.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는 제시된 시한을 이미 2개월 이상 넘겼으며, 임기 종료를 앞두고도 법안의 1회독조차 마치지 못했다. 향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회 일정 자체가 불확실해지면서 개정 논의는 더욱 미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감축 경로를 두고 여야 간 입장차가 심각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초기에 많이 감축하는 '조기 감축형'을, 국민의힘은 매년 일정 수준씩 줄여가는 '선형 감축 경로'를 주장하고 있다. 정부 부처 간에도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적극적 감축을 원하는 반면, 산업통상부와 재정경제부는 산업계 부담을 이유로 낮은 수준의 감축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 구조는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 논의가 미흡하다는 점이다. 탄소중립 과정에서 석탄·석유 등 특정 산업 종사자와 지역이 피해를 입을 수 있음에도, 이들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정책 메커니즘이 불완전하다. 정의로운 전환 정책 없이 급진적 감축을 추진할 경우 저소득층과 취약산업 종사자들의 생존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책 지연은 경제적 비용으로 전환될 것이다. 감축 경로가 명확하지 않을수록 기업들은 탄소감축 기술에 대한 투자 결정을 미루게 되고, 이는 궁극적으로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장기 목표 달성을 어렵게 한다. 동시에 국제적으로는 한국의 기후 정책 신뢰도가 하락하면서 국제 무역 질서에서 불리한 입장에 처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정의로운 전환'을 포함한 포괄적 개정을 강조한다. 배출권거래제 정상화, 산업·노동 부문의 섬세한 전환 정책, 농어업 부문의 적응 전략 등이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정부·기업·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기후 공론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정책 결정의 지연은 다음 세대의 기후채무가 되고 있다. 현재의 미루는 결정이 미래세대에게 더 큰 감축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남아있는 지금이 정의로운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을 준비할 마지막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