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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테크' 부활, Z세대가 이끄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

정원연 · 2026.09.07

'레트로 테크' 부활, Z세대가 이끄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

스마트폰이 모든 것을 흡수한 듯했던 전자기기 시장에 예상 밖의 변화가 일고 있다. 유선 이어폰, CD플레이어, 디지털카메라, MP3 플레이어 등 이미 쓸모가 다했다고 여겨진 '레트로 테크' 제품들이 Z세대(1997~2012년 출생)를 중심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무선 편의성과 클라우드 기반 스트리밍의 시대 속에서 아날로그 기술의 재부흥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새로운 소비 심리와 경제 현상으로 읽혀야 한다.

유선 이어폰의 부활은 가장 상징적이다. 애플이 아이폰에서 이어폰 잭을 제거한 2016년 이후, 무선 블루투스 이어폰이 주류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Z세대 사이에서는 오히려 유선 이어폰이 부활하고 있다. 저렴한 가격대, 배터리 충전 걱정 없음, 그리고 음질에 대한 순수한 집중이라는 실질적 장점이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심리적 만족감이다. 아날로그의 물리적 연결 감각, 온전히 음악에만 몰입할 수 있다는 느낌이 과잉 연결된 현대인들에게 오히려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온다. 이 트렌드는 경제적 의미를 갖는다. 유선 이어폰은 엄청난 마진율을 제공하는 고부가가치 상품이 아니지만, 대량 판매로 인한 회전율이 높다. 아마존, 쿠팡 같은 온라인 유통채널과 온오프라인 소매점에서 유선 이어폰 판매량이 급증한 이유다. 국내 전자 제조사들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프리미엄 유선 이어폰 시리즈를 출시하거나 기존 제품을 재마케팅하고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이 전문가 수준에 이르면서 별도의 디지털카메라는 불필요하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Z세대는 이제 디지털카메라를 다시 들고 있다. 특히 미러리스 카메라나 콤팩트 디지털카메라가 '감성 사진 촬영'의 도구로 재해석되고 있다. 중고 시장에서는 2000년대 필름카메라와 초기 디지털카메라가 고가에 거래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 현상의 배경에는 SNS 문화의 피로감이 있다. 완벽하게 가공된 이미지로 자신을 표현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Z세대는 감성적이고 때론 불완전한 사진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카메라 제조사들은 이를 감지하고 입문자 친화적인 미러리스 카메라를 출시하거나 과거 인기 모델을 한정판으로 복각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는 기존 카메라 산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카메라 렌즈, 메모리카드 등 주변기기 판매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스트리밍 시대에 CD플레이어의 귀환은 더욱 놀랍다. 음악 플랫폼들이 무료 또는 저가 구독 모델로 모든 음악을 제공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물리적 음반을 구매하려는 소비자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LP와 CD 판매는 2020년대 들어 해마다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 현상의 경제적 의미는 크다.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의 아티스트 수익 배분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음악 팬들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직접 음반을 구매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또한 물리적 음반은 수집 대상으로도 가치를 지니면서 프리미엄 상품으로 재포지셔닝됐다. 음반사, 아티스트, 유통사 모두에게 새로운 수익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뮤직 비닐 시장의 성장률은 연 10% 이상을 기록하고 있으며, 오디오 기기 제조사들도 고급 레코드 플레이어를 프리미엄 제품으로 개발하고 있다.

한때 아이팟으로 대표되던 MP3 플레이어도 부활하고 있다. 특히 고음질 음악 포맷(Hi-Res Audio)에 관심 있는 세대들이 휴대용 뮤직 플레이어의 음질 우수성을 다시 발견하고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압축된 음질로는 느낄 수 없는 원본 음질의 경험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니즈가 등장한 것이다. 이는 틈새 시장의 형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소니, 아스텔앤컨(A&K), 스탠리어 등 프리미엠 오디오 기기 제조사들은 고급 디지털 오디오 플레이어(DAP)를 출시하며 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가격대가 100만 원을 훨씬 넘기도 하는 이들 제품은 '음질 마니아'들 사이에서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는 전자 제조업계의 새로운 프리미엄 시장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Z세대의 독특한 소비 가치관이다. 편의성만을 추구했던 시대를 거쳐, 이제는 감정적 만족감, 진정성, 환경 친화성 등 다층적 가치를 함께 고려하는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또한 과잉연결의 시대에서 의도적으로 '불편함'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려는 욕구도 나타나고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이는 새로운 시장 기회를 의미한다. 기존의 '죽은 기술'으로 여겨진 카테고리에서도 프리미엄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제조사들은 단순히 제품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 감성과 기술을 결합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유선 이어폰에 우수한 음질을 담고, 디지털카메라에 감성적 화질을 추가하고, CD플레이어에 세련된 디자인을 입히는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