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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땅을 처음 밟은 유럽인 세스페데스 신부

이희용 · 2024.05.01

조선 땅을 처음 밟은 유럽인 세스페데스 신부

경남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의 세스페데스 공원

세스페데스 신부를 부조로 새겨놓았다. (경남도청 제공)

조선 땅을 처음 밟은 유럽인은 누구일까? 1627년 제주도에 표착했다가 정착한 네덜란드 선원 벨테브레(박연)를 떠올리기 쉽지만 그보다 34년 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인물이 있다. 스페인 출신 가톨릭 선교사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 신부다.

1551년 마드리드에서 태어난 세스페데스는 살라망카의 예수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인도를 거쳐 1577년 일본에 도착했다. 일본 각지를 돌며 선교에 나서고 오사카 수도원장으로도 봉직하다가 고니시 유키나가의 영지인 시코쿠 북쪽 쇼도섬에서 활동했다.

고니시는 일본 패권을 차지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심복 영주(다이묘)였다. 1584년 천주교에 귀의해 아우구스티노란 세례명을 받았다. 1587년 도요토미가 가톨릭 선교사 추방령을 내렸을 때도 세스페데스를 숨겨주었다.

그는 조선 침략에 반대했으나 도요토미가 뜻을 굽히지 않자 1592년 임진왜란에 선봉장으로 출전했다. 고니시가 이끄는 부대는 붉은 비단에 흰색 십자가를 그린 깃발을 앞세웠다. 휘하 병사 중에서도 천주교인이 많았다.

고니시는 충주와 한양을 거쳐 평양까지 파죽지세로 북상했다가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의 반격에 밀려 후퇴했다. 지금의 경남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에 성을 쌓아 웅거하며 명나라와 강화 협상에 나서는 한편 은밀히 세스페데스를 초청했다.

세스페데스는 일본 나가사키를 출발해 1593년 12월 27일 웅천왜성에서 30㎞ 떨어진 진해구 남문동의 사도마을에 상륙했다. 크리스마스 전에 도착할 계획이었으나 거센 풍랑을 만나 중간 기착지인 쓰시마로 되돌아왔다가 다시 출항하는 바람에 늦어졌다.

그는 1595년 6월까지 1년 6개월가량 머물며 왜군 천주교인들을 대상으로 미사와 고해성사 등을 집전했다. 비신자나 이교도 왜군에게도 가톨릭을 전파하고 세례를 주었다. 조선 백성들도 만나 복음을 전하려고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세스페데스의 선교 활동은 고니시와 대립하던 가토 기요마사에게 알려져 도요토미 귀에까지 들어간다. 즉각 일본으로 소환됐으나 처벌을 면하고 일본에서 선교에 전념하다가 1611년 선종(善終)했다.

세스페데스는 조선으로 오기까지의 여정과 조선에서의 생활을 일기 쓰듯이 적은 4통의 편지를 일본의 베드로 고메스 신부에게 보냈다. 조선군이 용감하게 싸우는 전투 장면과 전쟁의 참상 등도 담겨 있다. 이 편지는 ‘선교사들의 역사’란 책에 수록돼 베일에 싸인 우리나라의 문화와 풍습 등을 최초로 서양에 알린 기록으로 꼽힌다. 그는 조선을 ‘꼬레이(Coray)’라고 표기했다.

세스페데스가 쓰던 십자가도 전남 해남 대흥사에 전해 내려왔으나 1974년 도난당했다. 대흥사에는 임진왜란 당시 승군 총대장을 지낸 서산대사의 유품이 보관돼 있는데, 그 중 하나였다. 순금에 칠보로 장식돼 있으며 로마자 ‘SV’가 새겨져 있다. 교황청은 세스페데스 신부 소장품이 맞다고 확인했다. 서산대사가 이 십자가를 소장하게 된 배경과 경로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진해구 남문동에는 세스페데스 공원이 있다. 신부 기념비와 조각을 비롯해 피카소, 가우디, 토마토 축제, 투우, 프로축구단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 등 스페인을 대표하는 인물과 상징물을 꾸며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