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기회
K-시큐리티, ‘경계 방어’ 넘어 통합보안 산업으로 가야 한다

국내 보안 산업의 다음 승부처는 개별 솔루션 경쟁이 아니라 AI, 클라우드, 제로트러스트, 물리보안을 한데 묶는 통합보안 체계의 구축에 달려 있다. 정부가 제로트러스트 확산, 공공 보안체계 개편, AI 보안기업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K-시큐리티의 방향성도 ‘방어 기술의 나열’에서 ‘운영 가능한 산업 모델’로 옮겨가야 한다.
그 변화의 출발점은 보안 환경 자체가 달라졌다는 데 있다. 공공·금융·산업 현장은 이미 AI와 클라우드, 원격근무, 데이터 연계를 전제로 움직이고 있다. 과거처럼 내부망과 외부망을 단순 분리하는 방식만으로는 속도와 효율, 보안을 동시에 잡기 어렵다. 국가정보원은 2024년 공공 업무망에 대해 데이터 중요도에 따라 보안 수준을 달리 적용하는 다층보안체계 전환 방향을 공개했고, 이는 보안의 초점이 ‘고정된 차단’에서 ‘위험 기반 통제’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흐름의 핵심 축은 제로트러스트다. 한국인터넷진흥원과 관련 기관은 2023년 가이드라인 1.0을 내놓은 데 이어 2024년 말 가이드라인 2.0을 통해 성숙도 모델과 도입 절차를 더 구체화했다. 실제로 2025년 시범사업도 인증체계 강화, 마이크로 세그멘테이션, 소프트웨어 정의 경계를 반영한 실사용망 적용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제 K-시큐리티는 제품 하나를 파는 산업이 아니라, 사용자 인증부터 네트워크 분할, 단말 보호, 이상행위 탐지, 대응 자동화까지 묶어 제공하는 체계 산업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AI는 위협이자 기회다. 생성형 AI는 피싱, 딥페이크, 위·변조 공격의 비용을 낮추고 속도를 높였다. 반대로 보안 업계에는 탐지와 대응 자동화, 이상 징후 분석, 위협 인텔리전스 고도화라는 새 시장을 열고 있다. 정부가 2025년 AI 보안 유망기업 육성 사업을 추진하고, KISA가 딥페이크 차단, AI 감시, 안티스푸핑 등 과제를 지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향후 K-시큐리티의 경쟁력은 ‘AI를 막는 보안’과 ‘AI를 쓰는 보안’을 함께 갖추느냐에 달려 있다.
관건은 통합이다. KISA는 2025년 한국형 통합보안 모델 개발 시범사업을 통해 국내 보안기업 간 협업형 플랫폼 개발을 지원했다. 이는 산업 방향을 잘 짚은 접근이다. 지금 시장은 방화벽, 인증, 엔드포인트, 개인정보 보호, 위협 탐지를 따로 도입하는 구조보다 이를 하나의 서비스처럼 엮어 운영 부담을 줄이는 구조를 원한다. 중소기업일수록 복수 제품을 따로 관리할 여력이 부족하다. K-시큐리티가 내수 시장을 넘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기능 중심 분절형 제품보다 SaaS 기반 통합보안, XDR, 클라우드형 관리 서비스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
다만 장밋빛 전망만 앞세울 상황은 아니다. 국내 보안 산업은 여전히 공공 조달 의존도가 높고, 실증보다 인증과 규제 대응에 더 많은 비용을 쓰는 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기술은 있는데 현장 적용이 늦고, 해외에선 통할 만한 가격·운영 모델을 갖추지 못한 사례도 적지 않다. 제로트러스트 역시 구호는 빠르게 퍼졌지만, 현장에서는 기존 시스템과의 연동, 예산 부담, 전문 인력 부족이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다. 가이드라인만으로 시장이 커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K-시큐리티는 세 갈래에 집중해야 한다. 첫째, 공공 시범사업을 끝내는 데 그치지 말고 민간 산업단지, 병원, 학교, 제조 현장으로 실증 범위를 넓혀야 한다. 둘째, 보안 제품 평가 기준을 개별 기능 중심에서 연동성, 운영 편의성, 자동화 수준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셋째, 동남아·중동 등 디지털 전환이 빠른 시장을 겨냥해 클라우드형 통합보안 수출 모델을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 기술 우수성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장에서 바로 쓰이고, 해외에서 곧바로 팔릴 수 있는 패키지여야 한다.
결국 K-시큐리티의 미래는 ‘한국형 보안’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데 있지 않다. 복잡한 규제 환경과 빠른 디지털 전환, 높은 공격 밀도 속에서 검증된 운영 모델을 만드는 데 있다. 정부 정책이 제로트러스트, 다층보안체계, AI 보안, 통합보안으로 이미 방향을 틀었다면, 산업도 그 신호를 읽어야 한다. 다음 단계의 K-시큐리티는 더 많이 막는 보안이 아니라, 더 정밀하게 연결하고 더 빠르게 대응하는 보안이어야 한다. 그래야 내수 보호 산업을 넘어 수출 산업으로 커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