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기회
국립중앙박물관, ‘무료 상설전’ 17년 만에 유료화 시동…예약·정산 시스템부터 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상설전 무료 운영 기조를 접고 유료화 전환 작업에 착수했다. 2008년 전면 무료화 이후 17년 만의 방향 전환이다. 박물관은 ‘유료화’ 논쟁의 핵심인 공공성 훼손 우려를 의식해, 먼저 예약·예매와 전자 검표 등 운영 인프라를 깔고 시범 운영을 거쳐 본격 유료화 여부와 요금 수준을 정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유홍준 관장은 이날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관람 방식과 운영 구조 전반을 재설계하는 전환”이라고 밝히며 유료화에 대비한 고객정보통합관리(CRM) 체계를 올해 12월까지 구축하겠다고 했다. CRM에는 관람객 이용 통계와 현황을 수집·분석하는 기능이 포함된다. 박물관은 이를 바탕으로 내년 상반기 온라인 예약·예매 시스템을 개발해 시범 운영하고, 모바일 티켓과 비대면 전자 검표도 도입할 계획이다.
박물관이 유료화 전환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관람 환경 개선’과 ‘운영의 내실’이다. 박물관은 지난해 관람객이 650만 명을 넘어 혼잡이 심해졌다고 밝혔다. 관람객 급증에 대응해 개관 시간을 30분 앞당기고, 정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휴관일도 확대할 방침을 공개했다. 다만 유홍준 관장은 “관람 인원을 줄이려는 유료화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유료화는 공공 문화시설의 문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불가피하다. 상설전은 현재 무료이고, 일부 특별전만 유료로 운영 중이다. 무료 운영이 사실상 ‘국민 문화 향유권’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던 만큼, 요금 신설은 접근성 저하와 형평성 문제를 동시에 불러올 수 있다.
유료화가 정책적 정당성을 얻으려면 ‘돈을 받는 이유’와 ‘돈의 쓰임’을 먼저 설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물관은 입장료 수익을 소장품 확보와 시설 확충 등 경쟁력 강화에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재원 운용이 불투명하면 유료화는 ‘관람료 신설’로만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예약제만으로도 혼잡 관리가 가능한데 굳이 요금을 부과하는 것이냐는 반문도 남는다.
대안은 분명하다. 첫째, 저소득층·청소년·장애인·국가유공자 등 취약계층 면제와 할인 기준을 법령·내규로 명확히 하고, ‘무료일’ 또는 ‘야간 무료’ 같은 보편적 완충 장치를 병행해야 한다. 둘째, 요금 산정의 근거(혼잡 비용, 서비스 개선 항목, 투자 계획)를 공개하고, 입장료 수입의 일정 비율을 교육·해설·접근성 개선에 의무 배정하는 방식으로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셋째, 관람 수요가 집중되는 시간대에는 예약 기반의 차등 요금이나 회원제(연간패스) 등을 통해 ‘혼잡 완화’와 ‘접근성’ 사이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유료화는 박물관 운영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카드이기도, 공공성을 훼손할 수 있는 뇌관이기도 하다. 관람객 데이터를 요금 신설의 명분으로만 쓰면 반발은 커진다. 면제·차등·무료일 같은 안전장치와 재원 투명성, 서비스 개선의 실질적 성과가 함께 제시될 때만 유료화 전환은 ‘값어치’ 논쟁을 넘어 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