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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이 바꾼 역사와 문화

<제63화> 화장을 지우라고 만든 종이 — 크리넥스, 고객이 코를 풀자 회사가 광고를 바꿨다

임윤철 · 2026.10.31

<제63화> 화장을 지우라고 만든 종이 — 크리넥스, 고객이 코를 풀자 회사가 광고를 바꿨다

감기에 걸리면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상자에서 휴지를 한 장 뽑아 코를 풉니다. 그런데 이 얇은 종이가 처음에는 코를 풀라고 나온 물건이 아니었다면, 누가 그 용도를 바꿨을까요? 1920년대 미국 시카고의 광고 지면으로 가 보겠습니다.

여성들의 화장대 위에 콜드크림 병이 놓여 있습니다. 무대 배우들이 짙은 화장을 지울 때 쓰던 이 크림은 이제 집집마다 쓰는 화장품입니다. 문제는 크림을 닦아 내는 수건입니다. 욕실에 걸린 수건은 늘 기름때로 얼룩져 있습니다. 이때 잡지에 새 상품 광고가 실립니다. 한 장씩 뽑아 쓰고 버리는 종이, 크리넥스입니다. 오늘 사진은 1929년 10월 영화 잡지 『포토플레이』에 실린 광고입니다. 큰 글씨로 "콜드크림을 지우는 단 하나의 올바른 방법"이라고 적혀 있고, 그 아래에는 한 번에 두 장씩 나오는 새 상자와 분홍·노랑·초록 색깔 휴지가 자랑스럽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회사가 생각한 고객은 분명했습니다. 화장을 지우는 여성이었습니다.

방금 보신 장면은 광고 지면과 킴벌리클라크의 회사 역사로 남아 있는 실제 기록입니다. 이 종이의 뿌리는 제1차 세계대전입니다. 킴벌리클라크는 1914년 무렵 솜보다 물을 잘 빨아들이는 주름진 종이 솜을 개발했고, 전쟁 중 이 재료는 모자란 수술용 솜을 대신해 상처를 감쌌습니다. 방독면 필터로 쓰려는 시험도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이 재료를 얇고 부드럽게 다듬어 1924년 화장 지우는 종이로 내놓은 것이 크리넥스입니다. 그런데 사 간 사람들이 엉뚱한 데 썼습니다. 코를 푼 것입니다. 광고 부서는 처음에 감기용으로 파는 데 반대했지만, 광고 한쪽에 손수건 대용으로도 쓸 수 있다는 문구를 조금 넣었습니다. 일리노이주 피오리아의 한 신문에서 두 가지 용도를 놓고 독자 반응을 살폈더니 열에 여섯이 코 푸는 데 쓰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회사는 광고를 바꿨습니다. 1930년대 크리넥스의 구호는 "감기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지 마세요"였습니다. 천 손수건을 빨아 다시 쓰던 습관이 한 장 쓰고 버리는 휴지로 바뀐 것입니다.

자, 오늘의 결론입니다. 기술은 세상의 장면과 장면을 바꿉니다. 크리넥스의 진짜 시장을 찾아낸 것은 연구실이 아니라 고객의 손이었고, 그것을 돈으로 바꾼 것은 고객의 행동을 재 본 회사의 결단이었습니다. 이 회사가 한 일은 단순합니다. 두 가지 용도를 나란히 내걸고, 사람들이 어느 쪽에 손을 드는지 숫자로 확인했습니다. 내 생각이 아니라 고객의 선택을 기준으로 광고를 고친 것입니다. 기술을 가진 사람도 용도 하나에 모든 것을 걸기 전에, 후보 용도 두세 개를 작게 내걸고 반응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시제품 설명서 두 장, 제안 메일 두 가지, 시연 자리 두 곳이면 충분합니다. 어느 쪽에서 문의가 더 오는지, 어느 쪽 사람이 값을 먼저 묻는지가 곧 시장의 대답입니다. 크리넥스는 그 대답을 듣고 나서야 화장대에서 거실과 사무실과 주머니로 옮겨 갔습니다. "너는 뭐 먹고 살거니?"의 예순세 번째 힌트는 이것, 용도를 머리로 정하지 말고 두 개를 내걸어 고객이 고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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