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바꾼 역사와 문화
<제56화> 망치를 든 직공들 — 로봇이 일하면 나는 뭘 팔지

AI가 내 일을 대신하게 될까. 요즘 누구나 한 번쯤 하는 걱정입니다. 그런데 이 걱정이 망치를 들고 거리로 나온 밤이 214년 전에 있었습니다. 1811년 겨울, 영국 노팅엄으로 가 보겠습니다.
한밤중의 양말 공장. 복면을 쓴 직공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와, 사람 몇 몫의 일을 해내는 신형 편직 기계를 큰 망치로 내리칩니다. 망치에는 이름도 있었습니다. 대장장이 에녹의 공방에서 만든 큰 망치, '그레이트 에녹'입니다. 공교롭게도 부서지는 기계 역시 에녹의 공방 제품이라, 직공들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에녹이 만들었으니, 에녹이 부수리라. 그들은 스스로를 '러드 장군의 부하들'이라 불렀습니다. 공장주들에게는 러드 장군의 서명이 담긴 협박 편지가 날아들었습니다. 기계를 치우지 않으면 부수러 가겠다는 내용입니다. 물론 러드 장군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 직공들이 만들어낸 가공의 지도자였습니다. 기계 파괴는 들불처럼 번졌고, 놀란 의회는 이듬해 기계를 부순 자를 사형에 처하는 법을 통과시킵니다. 이 법안에 반대하며 상원에서 생애 첫 연설에 나선 청년이 있었으니, 훗날의 대시인 바이런입니다. 그는 물었습니다. 굶주림 때문에 기계를 부순 자를 목매다는 것이 문명인가.
방금 보신 장면은 지금도 국립문서보관소에 남아 있는 러다이트의 편지들과 재판 기록을 근거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정부는 진압을 위해 나폴레옹과 싸우던 병력보다 많은 군대를 국내에 풀었고, 1813년 요크의 재판에서는 열일곱 명이 교수대에 올랐습니다. 그렇다면 러다이트의 공포는 현실이 됐을까요. 여기에 반전이 있습니다. 방직이 기계화되자 옷값이 폭락했고, 싸진 옷의 수요가 폭발하면서 영국의 섬유 고용은 오히려 크게 늘었습니다. 물론 옛 방식의 수직공들은 몰락했으니 고통이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일자리의 총량이 아니라 일의 내용이 통째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이 패턴은 반복됩니다. 현금인출기가 퍼지면 은행 창구 직원이 사라질 거라 했지만, 지점 운영비가 싸지자 지점이 늘어 창구 직원 수는 오히려 증가했고, 그들의 일은 돈 세기에서 상담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늘날 창고에 로봇 100만 대를 들인 기업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직원을 새로 뽑는 회사이기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자, 오늘의 결론입니다. 기술은 세상의 장면과 장면을 바꿉니다. 사람이 베틀 앞에 앉아 있던 장면은 기계를 돌보고 설계하고 파는 장면으로 바뀌었고, 그때마다 사라진 것은 직업 그 자체보다 직업 속의 반복 작업이었습니다. 기계는 언제나 값을 낮춰 수요를 키웠고, 커진 시장은 사람에게 기계가 못 하는 새 일을 시켰습니다. 다만 러다이트가 남긴 진짜 교훈은 따로 있습니다. 전환의 이득은 사회 전체가 누리지만 전환의 고통은 특정한 사람들에게 몰린다는 것, 그래서 그 고통을 나누는 설계가 없으면 망치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AI 시대의 5차산업혁명도 같은 시험대에 오릅니다. "너는 뭐 먹고 살거니?"의 쉰여섯 번째 힌트는 이것, 기계와 같은 일을 놓고 다투지 말고 기계 덕분에 새로 생겨나는 일의 첫 줄에 서라는 것입니다. 철이네 오이마켓이 다음 장면으로 안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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