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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이 바꾼 역사와 문화

<제67화> 군함 계기용 스프링이 계단을 걸어 내려가다 — 슬링키, 해군이 외면한 스프링에서 아내가 장난감을 보았다

임윤철 · 2026.11.05

<제67화> 군함 계기용 스프링이 계단을 걸어 내려가다 — 슬링키, 해군이 외면한 스프링에서 아내가 장난감을 보았다

계단 맨 위에 올려놓고 살짝 밀면, 한 칸 한 칸 혼자서 걸어 내려가는 용수철 장난감이 있습니다. 슬링키입니다. 이 장난감은 원래 군함에 실을 정밀 계기를 위한 부품으로 개발되던 스프링이었습니다. 해군도 원하지 않은 이 스프링에서 누가 상품을 보았을까요? 1943년 미국 필라델피아로 가 보겠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때, 해군 기계 기술자 리처드 제임스가 작업대 앞에 앉아 있습니다. 그가 매달린 문제는 거친 바다에서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예민한 계기가 떨리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스프링입니다. 그때 시험하던 스프링 하나가 선반에서 떨어집니다. 그런데 스프링은 바닥에 그냥 툭 떨어지지 않습니다. 둥근 고리를 그리며 한 걸음, 또 한 걸음 걸음을 옮기듯 내려앉더니 바닥에 똑바로 섭니다. 기술자의 눈에는 실패한 부품의 엉뚱한 움직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움직임을 잊지 못하고 아내 베티에게 보여 줍니다.

방금 보신 장면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레멜슨 센터와 여러 역사 기록에 남아 있는 실제 기록입니다. 해군은 이 스프링에 끝내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레멜슨 센터의 기록에 따르면, 이 스프링을 장난감으로 팔 수 있다고 본 사람은 베티였습니다. 남편이 부품을 볼 때 그녀는 아이들의 손을 떠올린 것입니다. 그녀는 사전을 뒤져 '미끄러지듯 나긋나긋하다'는 뜻의 단어에서 '슬링키'라는 이름을 골랐다고 전해집니다. 문제는 아무도 이 물건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상자에 든 철사 뭉치는 진열대에 놓여 있어도 그냥 용수철일 뿐입니다. 1945년 11월 27일, 두 사람은 필라델피아의 김벨스 백화점 장난감 매장에 비스듬한 판을 세우고 슬링키를 걷게 했습니다. 가져간 400개가 90분 만에 모두 팔렸습니다. 값은 하나에 1달러였습니다. 리처드는 철사 24m쯤을 10초 만에 감아 내는 기계를 만들어 값을 낮게 지켰고, 50주년인 1995년까지 2억 5천만 개가 넘게 팔렸습니다. 쓸모는 그 뒤로도 늘었습니다. 교사들은 파동을 가르칠 때 썼고, 베트남전에서는 병사들이 무선 안테나로 썼습니다.

자, 오늘의 결론입니다. 기술은 세상의 장면과 장면을 바꿉니다. 같은 스프링을 두고 기술자는 '계기를 붙잡지 못하는 부품'을 보았고, 아내는 '혼자 걷는 장난감'을 보았습니다. 기술을 만든 사람은 원래 목표에 눈이 묶여 있기 쉽습니다. 목표에 맞지 않는 성질은 결함으로만 보입니다. 그래서 내 분야 밖에 있는 사람에게 기술을 보여 주는 일이 중요합니다. 엔지니어가 아닌 사람, 그 산업에 있지 않은 사람이 "이거 재미있다", "이거 우리 가게에 필요하다"고 말하는 순간 새 시장이 열립니다. 연구실 안에서 쓸모를 찾지 못한 기술일수록 연구실 밖의 눈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눈이 찾은 쓸모는 김벨스 백화점에서처럼 고객 앞에서 직접 움직여 보일 때 비로소 돈이 됩니다. "너는 뭐 먹고 살거니?"의 예순일곱 번째 힌트는 이것, 내 기술의 엉뚱한 성질은 내 분야 밖 사람에게 먼저 보여 주라는 것입니다.

사진: ell brown,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