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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이 바꾼 역사와 문화

<제68화> 스무 곳이 넘게 거절한 복사기 — 제록스, 비싼 기계를 '한 장에 얼마'로 팔다

임윤철 · 2026.11.06

<제68화> 스무 곳이 넘게 거절한 복사기 — 제록스, 비싼 기계를 '한 장에 얼마'로 팔다

시즌 2의 두 번째 마당은 '아무도 사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좋은 기술인데 아무도 돈을 내지 않을 때, 발명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오늘은 그 질문을 가장 오래 견딘 사람을 만납니다. 1938년 10월 22일, 미국 뉴욕 퀸스의 아스토리아로 가 보겠습니다.

장모의 집 2층에 마련한 작은 실험실. 전자회사 특허 부서에서 일하는 체스터 칼슨이 오스트리아 출신 물리학자 오토 코르나이와 함께 실험대 앞에 서 있습니다. 칼슨의 낮 일은 특허 서류를 베끼고 대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손으로 옮겨 적고, 비싼 사진 복사를 맡기는 일이 그는 지긋지긋했습니다. 코르나이가 현미경용 유리판에 먹물로 '10-22-38 ASTORIA'라고 씁니다. 칼슨은 황을 입힌 아연판을 면 손수건으로 문질러 정전기를 띠게 한 뒤, 유리판을 겹쳐 전등 빛을 쬡니다. 판 위에 석송 가루를 뿌리고 훅 불어 내자, 글씨 모양대로 가루가 남습니다. 그 가루를 밀랍 종이에 옮기고 열을 가해 붙입니다. 액체 약품을 쓰지 않는 마른 방식, 오늘날 복사기 원리의 첫 성공이었습니다.

방금 보신 장면은 미국물리학회(APS)의 기록과 칼슨의 전기로 남아 있는 실제 기록입니다. 그날 만든 첫 복사본도 지금까지 전해집니다. 반전은 그다음입니다. 칼슨은 1939년부터 다섯 해 동안 IBM을 비롯한 큰 회사들을 찾아다녔지만, 스무 곳이 넘는 회사와 정부의 발명 심사 기구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먹지와 사진 복사가 이미 있는 세상에서, 아직 없는 기계의 쓸모를 믿어 줄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1944년에야 비영리 연구소 바텔기념연구소가 기술 개발을 맡았고, 1947년 뉴욕 로체스터의 작은 인화지 회사 할로이드가 기계를 만들 권리를 얻었습니다. 그 회사가 나중의 제록스입니다. 보통 종이에 단추 하나로 복사하는 사무용 기계 914가 나온 것은 첫 복사 뒤 21년이 지난 1959년이었습니다. 그런데 무게가 300kg 가깝고 값이 2만 7,500달러였습니다. 회사는 파는 방식을 바꿨습니다. 기계를 빌려주고 매달 적은 기본료에 복사 한 장마다 값을 받는 방식입니다. 1965년 기준으로 한 달 25달러에 한 장 10센트였습니다. 사무실은 기계값을 한꺼번에 낼 필요가 없어졌고, 복사를 많이 할수록 회사의 수입도 늘었습니다. 914는 한때 회사 매출의 3분의 2를 차지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자, 오늘의 결론입니다. 기술은 세상의 장면과 장면을 바꿉니다. 스무 곳 넘는 회사가 거절한 이유는 기술이 나빠서가 아니었습니다. 고객이 아직 그 가치를 몰랐고, 값이 너무 커 보였기 때문입니다. 제록스가 넘은 벽은 기술이 아니라 '처음 사는 결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기계를 파는 대신 쓴 만큼만 돈을 받았습니다. 고객이 위험을 지지 않게 해 주면, 고객은 써 보고, 써 본 고객은 가치를 알게 됩니다. 거절이 계속될 때는 기술을 의심하기 전에 값을 받는 방식을 의심해 볼 일입니다. "너는 뭐 먹고 살거니?"의 예순여덟 번째 힌트는 이것, 고객이 살 결심을 못 하면 물건값 대신 쓰는 만큼의 값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사진: Marcin Wichary,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