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바꾼 역사와 문화
<'100년기업' 제10화> 문항에도 두 얼굴이 있었다 - 아는 사람과 겪는 사람

방법론을 다 세웠다고 안심한 것도 잠시였다. 여섯 개 자리를 하나씩 다시 점검하다가, 다섯 번째 자리의 마지막 문항 — "지분·정관·신탁·위임규칙 등 제도적 장치가 사익추구를 제약하는가" — 앞에서 멈췄다. 이 문항에 여러 명이 답한다고 가정해보았다. 대표는 회사의 지분 구조와 정관을 정확히 안다. 그런데 부장급 중간관리자가 이 질문에 무엇을 답할 수 있을까. 대부분은 모른다. 모르는 사람에게 억지로 답을 받으면, 그 사람은 "잘 모르겠으니 보통"으로 찍거나 짐작으로 답한다. 그리고 그 짐작이 "대표와 다른 인식"으로 잘못 집계된다. 그건 인식의 차이가 아니라 정보의 차이였다.
이 문제를 풀려면 문항을 다시 들여다봐야 했다. 서른 개 문항을 하나씩 다시 읽으며 두 종류로 나눴다. "회사의 지분 구조가 어떤가", "재무 여력이 얼마나 되는가" 같은 문항은 회사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묻는다 — 이것을 사실형 문항이라 불렀다. 반대로 "직원을 존중하는 문화가 실재하는가", "주변부의 작은 실험에 관용적인가" 같은 문항은 정답이 없다. 응답자 각자가 실제로 겪고 느끼는 것 자체가 데이터다 — 이것은 인식형 문항이다.
다시 서른 문항을 하나씩 채점해보니, 사실형 문항이 열일곱 개, 인식형 문항이 열세 개였다. 뜻밖의 사실도 하나 발견했다. 재무 여력을 다루는 관점의 다섯 문항은 전부 사실형이었다. 재무 데이터를 아는 사람만 정확히 답할 수 있으니, 여러 사람에게 물어 평균 내는 방식 자체가 애초에 맞지 않았다. 반대로 승계를 다루는 관점의 인재육성 문항(교육체계가 있는가, 핵심 기술이 조직에 축적되는가)은 오히려 대표보다 현장의 중간관리자가 더 정확할 수 있는, 방향이 뒤집힌 인식형 문항이었다.
이 구분을 반영한 결과, 가상의 응답자로 검증했을 때 승계를 다루는 관점의 직급 간 격차가 25점 만점에 15.5점에서 6.5점으로 줄었다. 그 6.5점은 온전히 진짜 인식 차이에서 나온 것이었다. 정보의 차이가 인식의 차이로 둔갑하는 일이 구조적으로 사라진 것이다.
출처: 조직 연구 방법론 — 정보원(informant)과 응답자(respondent)의 구별에 관한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