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바꾼 역사와 문화
<제37화> 3밀리초를 위해 산을 뚫다 — 100만분의 1초의 전쟁

우리는 눈 깜빡할 새를 짧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어떤 시장에서는 눈 깜빡임의 수백 분의 일, 100만분의 1초를 다투며 수십억 원이 오갑니다. 정보 속도 경쟁이 도달한 극한의 현장으로 가 보겠습니다. 2010년 무렵의 미국입니다.
한 회사가 은밀한 공사를 벌입니다. 시카고의 선물거래소와 뉴욕의 증권거래소를 잇는 가장 짧은 광케이블을 깔기 위해, 두 도시 사이 1,300여 킬로미터를 거의 자를 대고 그은 듯 직선으로 관통하는 것입니다. 산이 가로막으면 산을 뚫고, 강이 있으면 밑으로 지났습니다. 이 미친 공사에 3억 달러가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줄인 시간은 고작 3밀리초, 1,000분의 3초였습니다. 그 3밀리초를 위해 3억 달러를 쓴 이유는 분명합니다. 남보다 그만큼 먼저 시세를 받아 먼저 주문을 넣는 거래자가 매번 이기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버튼을 누르는 게 아니라, 알고리즘이 100만분의 1초 단위로 사고팔며 아주 작은 차익을 무수히 쌓아 올리는 세계. 봉화로 시작한 정보 속도 경쟁이 다다른 종착점입니다.
방금 보신 것은 초단타매매 업계의 실제 사례를 근거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속도 전쟁은 뜻밖의 반전을 낳았습니다. 2010년 5월 6일, 알고리즘들이 서로 반응하며 폭주하자 미국 증시가 단 몇 분 만에 폭락했다가 되돌아오는 이른바 플래시 크래시가 벌어졌습니다. 사람은 손쓸 새도 없었습니다. 속도가 공정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해법이 나옵니다. 몇몇 사람들이 일부러 신호를 늦추는 거래소를 만든 것입니다. 모든 주문에 아주 짧은 지연을 똑같이 걸어, 남보다 빠른 것이 이득이 되지 않게 만든 이 '속도 방지턱'은, 느림을 팔아 신뢰를 산 셈입니다. 끝없이 빨라지기만 하던 경쟁에서, 공정한 느림이 새로운 상품이 된 것입니다.
자, 오늘의 결론이자 5부의 마무리입니다. 기술은 세상의 장면과 장면을 바꿉니다. 봉화의 불을 세고 비둘기를 날리던 장면은, 산을 뚫어 3밀리초를 줄이는 장면으로 바뀌었습니다. 5부에서 우리는 정보의 속도가 곧 돈이 되는 과정을, 봉수에서 로스차일드의 전령, 로이터의 비둘기, 대서양 케이블, 전화, 바코드를 거쳐 100만분의 1초의 전쟁까지 따라왔습니다. 그러나 속도의 끝에서 인류가 발견한 것은 뜻밖에도 공정이었습니다. 모두가 빠름을 좇을 때, 누구에게나 똑같은 규칙이 새로운 가치가 된 것입니다. 5차산업혁명 시대에 AI가 정보 처리 속도를 무한히 끌어올릴수록, 역설적으로 신뢰와 공정을 설계하는 일의 값이 오릅니다. "너는 뭐 먹고 살거니?"의 서른일곱 번째 힌트는 이것, 모두가 더 빨라지려 할 때 공정한 규칙을 파는 자리도 함께 커진다는 것입니다. 철이네 오이마켓이 다음 장면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사진: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CC BY-SA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