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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이 바꾼 역사와 문화

<제40화> 나무 한 그루 아래서 시작된 시장 — 버튼우드 협정

임윤철 · 2026.09.16

<제40화> 나무 한 그루 아래서 시작된 시장 — 버튼우드 협정

세계 최대의 증권거래소인 뉴욕증권거래소는 거대한 건물과 수많은 규칙으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이 거대한 시장이 나무 한 그루 아래에서 스물네 명의 약속으로 시작됐다면 믿으시겠습니까? 1792년 봄, 뉴욕 월스트리트로 가 보겠습니다.

당시 월스트리트에서는 국채와 주식이 사고팔렸지만, 시장에는 규칙이 없었습니다. 아무나 끼어들어 값을 어지럽혔고, 사기와 투기가 판쳤으며, 얼마 전에는 큰 투기꾼의 파산으로 시장이 아수라장이 된 참이었습니다. 그러자 스물네 명의 증권 중개인이 길가에 선 커다란 버튼우드 나무, 우리말로 플라타너스 아래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짧은 협정문에 서명합니다. 앞으로 우리끼리만 거래하고, 아무에게나 팔지 않으며, 수수료는 정해진 아래로 깎지 않는다. 단 몇 줄짜리 이 약속이 뉴욕증권거래소의 출발점이 된 버튼우드 협정입니다. 건물도 정관도 없이, 나무 그늘 아래 선 사람들의 약속 하나로 세계 최대 시장의 씨앗이 뿌려진 것입니다.

방금 보신 장면은 지금도 전하는 버튼우드 협정의 기록을 근거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11화에서 우리는 암스테르담에서 주식이라는 물건이 처음 발명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물건이 있다고 곧바로 좋은 시장이 서는 것은 아닙니다. 누가 거래에 참여할 수 있는지, 값은 어떻게 정하는지, 약속을 어긴 자는 어떻게 되는지, 이런 규칙이 없으면 시장은 30화에서 본 레몬 시장처럼 무너지고 맙니다. 버튼우드의 스물네 명이 만든 것은 새로운 상품이 아니라 바로 이 규칙, 곧 회원제 거래소라는 제도였습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들끼리 정해진 규칙 안에서만 거래하자는 이 약속 덕분에, 어지럽던 노상 거래는 질서 있는 시장으로 자라났습니다. 나무는 1865년 폭풍에 쓰러졌다고 전하지만 규칙은 남아, 오늘날 하루 수십조 원이 오가는 거래소가 되었습니다. 뉴욕증권거래소는 지금도 그 나무를 기려 자신들의 뿌리를 버튼우드에서 찾습니다.

자, 오늘의 결론입니다. 기술은 세상의 장면과 장면을 바꿉니다. 아무나 끼어들어 값을 어지럽히던 노상의 장면은, 회원들이 규칙 안에서 질서 있게 거래하는 장면으로 바뀌었습니다. 거래소의 본질은 건물이나 기술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규칙과 그 규칙을 지키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좋은 상품을 만드는 것과 좋은 시장을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며, 시장을 여는 사람에게는 상품보다 규칙을 설계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5차산업혁명 시대에도 데이터 거래소, AI 모델 장터 같은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데, 여기서도 승부는 누가 먼저 믿을 만한 규칙을 세우느냐에서 갈립니다. "너는 뭐 먹고 살거니?"의 마흔 번째 힌트는 이것, 새 상품이 나올 때 그 상품이 거래될 규칙과 마당을 먼저 짓는 자리에 서라는 것입니다. 철이네 오이마켓이 다음 장면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사진: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CC BY-SA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