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마켓기술을 고객가치로 만드는 미디어

과학기술이 바꾼 역사와 문화

<제36화> 껌 한 통이 연 데이터 시대 — 삑 소리의 경제학

임윤철 · 2026.09.07

<제36화> 껌 한 통이 연 데이터 시대 — 삑 소리의 경제학

계산대에서 물건을 대면 삑 소리와 함께 값이 찍힙니다. 너무 익숙해서 아무도 신기해하지 않는 이 소리가, 유통의 역사를 통째로 바꾼 발명이었습니다. 1974년 6월 26일 아침, 미국 오하이오의 한 슈퍼마켓으로 가 보겠습니다.

오전 8시가 조금 지난 시각, 트로이의 마시 슈퍼마켓 계산대. 한 손님이 껌 한 통을 바구니에서 꺼내 올려놓습니다. 리글리 주시프루트 껌, 값은 67센트. 계산원이 그 껌을 계산대의 유리창에 슬쩍 대자, 처음 들어보는 소리가 울립니다. 삑. 화면에 값이 저절로 찍힙니다. 사람이 가격표를 보고 숫자판을 두드린 게 아니라, 포장지에 인쇄된 검고 흰 줄무늬를 기계가 읽어낸 것입니다. 세계 최초로 상품 바코드가 상업적으로 스캔된 순간입니다. 그 껌은 지금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평범한 껌 한 통이 새 시대의 첫 상품으로 역사에 남은 것입니다.

방금 보신 장면은 바코드 상용화의 역사에 남은 실제 기록입니다. 그런데 이 줄무늬의 탄생에는 긴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바코드의 원리는 그보다 25년 전인 1949년, 노먼 우드랜드라는 청년이 플로리다 해변에서 생각해 냈습니다. 그는 모래사장에 손가락으로 모스 부호의 점과 선을 긋다가, 그 점과 선을 아래로 길게 늘이면 굵고 가는 줄무늬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보를 줄무늬로 바꾼 이 발상은 곧 특허가 됐지만, 문제는 그 줄무늬를 읽어낼 기계였습니다. 값싼 레이저와 컴퓨터가 없던 시절, 바코드는 20년 넘게 서랍 속에서 잠들어 있어야 했습니다. 아이디어가 시대를 너무 앞서면, 기술이 따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마침내 레이저 스캐너와 컴퓨터 값이 떨어진 1970년대, 잠자던 줄무늬는 껌 한 통과 함께 깨어났습니다.

자, 오늘의 결론입니다. 기술은 세상의 장면과 장면을 바꿉니다. 계산원이 일일이 값을 외우고 두드리던 장면은, 기계가 줄무늬를 읽어 순식간에 처리하는 장면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바코드가 진짜로 바꾼 것은 계산 속도가 아닙니다. 삑 소리가 날 때마다 무엇이 언제 얼마에 팔렸는지가 데이터로 쌓였고, 상점은 처음으로 자기 매대에서 벌어지는 일을 숫자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무엇이 잘 팔리는지, 언제 채워야 하는지, 이 데이터가 재고 관리와 공급망을 통째로 바꿨습니다. 20화의 셀프서비스가 고르는 권한을 손님에게 넘겼다면, 바코드는 팔린 것을 데이터로 바꿔 상점에게 돌려준 것입니다. 5차산업혁명 시대에 모두가 말하는 데이터 경제의 첫 삑 소리가, 바로 이 껌 한 통이었습니다. "너는 뭐 먹고 살거니?"의 서른여섯 번째 힌트는 이것, 거래가 일어날 때마다 데이터를 남기는 구조를 쥔 자가 다음 시대의 정보를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철이네 오이마켓이 다음 장면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사진: 포장지에 인쇄된 검고 흰 줄무늬 (CC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