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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이 바꾼 역사와 문화

<제34화> 바다 밑에 전선 하나를 깔다 — 대서양을 이은 12년의 집념

임윤철 · 2026.09.02

<제34화> 바다 밑에 전선 하나를 깔다 — 대서양을 이은 12년의 집념

지금 우리는 화상통화로 지구 반대편 사람과 실시간으로 얼굴을 봅니다. 바다 밑에 깔린 광케이블 덕분이죠. 그 첫 번째 전선이 대서양을 건너던 날, 인류는 처음으로 대양을 사이에 두고 실시간으로 대화했습니다. 1858년 여름으로 가 보겠습니다.

그때까지 유럽과 아메리카 사이의 소식은 오직 배로만 오갔습니다. 아무리 빠른 증기선도 열흘이 걸렸으니, 런던의 뉴스가 뉴욕에 닿을 때쯤이면 이미 옛날이야기였습니다. 미국의 사업가 사이러스 필드는 이 대양의 밑바닥에 전선을 깔겠다는, 당시로선 미친 소리 같은 꿈에 매달렸습니다. 배 두 척이 대서양 한가운데서 만나 케이블을 잇고 각자 반대편으로 풀며 항해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첫 시도에서 케이블은 뚝 끊어졌습니다. 다시 감아 이었지만 또 끊겼습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1858년 8월, 마침내 전선이 대륙을 이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과 미국 뷰캐넌 대통령이 축하 전문을 주고받자 뉴욕은 축포와 행진으로 들끓었습니다. 열흘 걸리던 소식이 몇 분으로 줄어든 것입니다.

방금 보신 장면은 대서양 횡단 전신의 역사에 남은 실제 기록을 근거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감격에는 쓰라린 반전이 있습니다. 1858년의 그 케이블은 겨우 몇 주 만에 신호가 약해지다 완전히 끊겨 버렸습니다. 축포를 쐈던 사람들은 이 사업이 사기였냐며 등을 돌렸습니다. 필드는 파산 직전까지 몰렸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남북전쟁의 혼란을 견디며 자금을 다시 모았고, 당대 세계에서 가장 큰 배였던 그레이트이스턴호를 케이블 부설선으로 개조했습니다. 그리고 첫 도전으로부터 무려 12년이 지난 1866년, 마침내 끊기지 않는 케이블이 완성됐습니다. 이번에는 진짜였습니다. 그날 이후 대서양 양안의 상인들은 같은 날 같은 시세를 보며 거래했고, 뉴욕과 런던의 시장은 하나로 묶였습니다. 필드는 이 공로로 미국 의회의 특별 훈장을 받았는데, 실패를 열두 해나 견딘 끈기에 대한 상이기도 했습니다.

자, 오늘의 결론입니다. 기술은 세상의 장면과 장면을 바꿉니다. 대양이 정보를 열흘씩 가두던 장면은, 바다 밑 전선 하나로 대륙과 대륙이 실시간으로 이어지는 장면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케이블이 만든 것은 단순한 통신이 아니라 '동시성'입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을 지금 이 순간 함께 아는 세계, 곧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실시간 지구의 출발점입니다. 상품이 아니라 정보의 인프라를 깐 사람이 시장의 판 자체를 새로 짠 것입니다. 5차산업혁명 시대에도 대륙을 잇는 해저 광케이블과 위성망을 쥔 자가 데이터 시대의 항로를 지배합니다. "너는 뭐 먹고 살거니?"의 서른네 번째 힌트는 이것, 사람들이 오갈 길 자체를 놓는 사업은 그 길 위의 모든 거래에서 통행료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철이네 오이마켓이 다음 장면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사진: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CC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