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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진 칼럼] 부처별 칸막이를 넘어서지 못하면, 대한민국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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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과기정통부 장관은 'K-AI 반도체 포럼'을 열어 R&D 성과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의지를 밝혔습니다. 취지는 좋지만, 현장에서는 깊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왜냐하면 AI반도체 기술을 실제 가져다 쓸 산업부, 국방부, 국토부, 농림부 같은 수요 부처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기부 혼자 기획하고 실증까지 하려는 구조를 발표한 겁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도 결국 '부처 간 칸막이'에 막혀 시장에 퍼지지 못함을 보여준 겁니다. 이와 관련해서 장관 SNS에 의견을 남겼는데 과기부 관료들이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이런 반응 자체가 그만큼 부처 칸막이 벽이 단단하고 예민한 문제라는 증거입니다.
이 칸막이를 지금 당장 허물지 않으면, 35조 원의 R&D 예산도 소용없습니다. 이제는 부처 간 협력을 더 이상 '선의'나 '권고'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명확하게 '법률적 책임과 의무'로 강제해야 할 상황입니다.
1. 분절된 생태계, 파편화된 대책
며칠전 SNS에서 진행된 과기정통부 혁신본부장과 현장 전문가의 대화는 현실을 잘 보여줍니다. 전문가가 "기술 개발을 넘어 현장 활용과 검증으로 R&D가 진화해야 한다"고 말하자, 본부장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특허청이 지식재산권 연계를 하고, 조달청이 혁신조달을 맡으며, 기재부가 세제 혜택을 주고, 과기부는 후속 R&D를 발굴합니다.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이 모든 연계 협력 지원책은 정작 기술의 진짜 수요처(산업부, 국방부, 국토부 등)가 기획 첫날부터 함께하지 않으면 전부 겉돌게 됩니다. 과기부는 8년전쯤 AI 업무를 맡은 후, 기술 개발뿐 아니라 시장 안착을 위해 소속 기관을 통한 관련 실증 사업까지 광범위하게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타 부처와의 협력할 필요도 없고 요청도 없으니 스스로 모든 것을 메우려는 고육지책이죠. 이처럼 정부부처마다 예산 성격과 사업 영역이 다르다 보니, '부처 간 이어달리기'가 아니라 '각자 트랙을 따로 달리는 사일로 현상' 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2. 과기부의 '피지컬 AI독자 월드모델' 환상과 밥그릇 싸움
이 칸막이 행정의 최근 사례가 며칠전 발표한 과기부의 '피지컬 AI 독자 월드모델' 사업입니다. 로봇이나 자율주행이 학습할 가상 환경을 국산화하겠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이사업에는 두 가지 본질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현실성 없는 독자 모델 개발 환상입니다.
이미 전 세계 로봇 시장은 엔비디아의 '아이작 심'이라는 플랫폼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테슬라는 수백만 대의 실제 차량 데이터로 모델을 진화시키는 중입니다. 빅테크들이 수조 원을 쏟는 이 전장에서, 국내 연구소 몇 곳이 2년간 340억 원을 받고 "독자 모델을 만들겠다"는 것은 현장을 무시한 발상입니다. 뒤늦게라도 정부가 무엇이라도 했다는 주장을 위해 숟가락 올리는 행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둘째, 산업부 사업과 상당히 중복됩니다.
산업부는 이미 'AI 자율제조 프로젝트'와 '로봇 플래그십' 사업을 통해, 국내 대기업들과 똑같은 가상 시뮬레이션 환경을 구축해왔습니다. 결국 과기부 연합군(LG, KT 등)과 산업부 연합군(현대차, 두산 등)이 칸막이를 치고, 국민 세금으로 똑같은 연구를 각자 따로 하는 셈입니다. 협력 원칙은 단순합니다. 과기부가 월드모델을 만들면, 제조 현장을 가진 산업부를 통해 검증해야 합니다. 국방에 쓰려면 국방부가, 의료에 쓰려면 복지부가 실증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부부처간 성과 공유와 이어달리기 필요성도 없고 강제성도 없으니, 부처들은 각자 자기 산하기관을 동원해 별도의 비R&D 사업으로 직접 실증까지 하고 있습니다. 산업부 사업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업을 과기부 산업부 각자 조용히 추진하고 있는겁니다. 몸통(산업 현장) 없는 머리(과기부)가 혼자 움직이겠다는 기형적 구조가 반복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업들의 검증은 철저하고 명확한 기준으로 진행 해야 합니다. 2년 뒤, 참여 기업들이 엔비디아 구독을 끊고 이 국산 모델로 실제 상용 라인을 100% 전환했는지 추적해야 합니다. 그리고 개발된 모델을 깃허브에 오픈소스로 공개했을 때, 글로벌 개발자들이 실제로 다운로드받아 쓰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끼리만 돌려보는 모델은 죽은 모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3. 미국과 중국의 '죽음의 계곡' 깨는 법
미국과 중국은 더 이상 정부부처들의 자발적 협력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국가 전략기술에 대하여 기술 개발부터 현장 적용까지를 '하나의 사슬'로 강제로 묶어 관리합니다. 미국은 마일스톤 기반 조기 퇴출(Go/No-Go) 방식을 추진합니다. 미국 DARPA는 다년도 과제라도 예산을 통으로 주지 않습니다. 몇 달 단위로 가혹할 정도의 정량적 성능 검증을 합니다. 기획 때 약속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거나, 후속 부처나 시장의 수요가 확인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남은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과제를 강제 종료시킵니다.
중국은 전체 과정 관리와 단계별 일몰 체계를 진행합니다. 2016년부터 과학기술부(원천기술)와 공신부(산업화)의 칸막이를 깨기 위해 '국가중점연구개발계획'을 가동 중입니다. 과제 시작 첫날부터 기술 개발 부처, 수요 부처, 실제 기업이 한 테이블에 앉아 기초연구 → 응용개발 → 현장 실증까지 하나의 파이프라인 계약을 맺습니다. 후속 부처가 요구하는 스펙을 첫 단계부터 명확히 확약받고 개발 부처는 연구를 시작하는 겁니다. 중간 평가 때 후속 부처나 수요 기업이 "이 기술은 우리 현장에 못 씁니다" 하며 인수를 거부하면, 그 즉시 다음 단계 예산은 전액 국고로 강제 회수됩니다.
4. '부처 간 이어달리기 법제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금의 느슨한 형식적 보여주기식 부처별 협력 구조로는 어떤 한계를 넘을 수 없습니다. 법률적 책임에 기반한 강제적 이어달리기 체계의 전면 도입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첫째, 공동 기획과 연대 책임을 법적 의무로 해야합니다.
국가연구개발혁신법 등을 개정하여, AI·반도체·양자 등 미래 국가 전략기술에 대해서는 다부처 '공동 기획 및 연대 책임'을 법적 의무로 명시해야 합니다.
둘째, 후속 성과 활용 정부 부처의 인수 거부 시 예산 자동 일몰제가 필요합니다. 과기부의 원천 성과를 산업부, 국방부, 조달청 등 후속 부처와 기관이 검증·인수하지 않거나 연계에 실패할 경우, 해당 라인 전체의 후속 예산이 자동으로 사라지도록 법적 배수의 진을 쳐야 합니다. 그래야 관료들이 사업을 기획하는 첫날부터 협력을 강제로 의무화하게 됩니다.
셋째, 피지컬 AI와 관련해서는 범용 모델보다 특화 AI로 전략을 구체화한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 빅테크를 따라잡겠다는 범용 모델 개발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 최고인 반도체·배터리·자동차 등 특정 제조 공정에 특화된 '버티컬(특화) AI'로 전략을 구체화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나마 경쟁력이 남게 됩니다.
넷째, AI 기반 중복 감지 시스템 구축과 법 적용 예외 철폐
과기부는 최근 '예산심의 특화 AI 서비스'를 발표했습니다. 문서 자동요약과 유사·중복 사업을 검증해 준다고 합니다. 정말 필요한 일입니다.여기에 더해, 부처들이 서류 양식만 바꾸고 사업명만 살짝 비틀어 예산을 중복으로 타내는 행위를 법적으로 차단해야 합니다. 모든 R&D 과제의 메타데이터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하고, AI로 부처 간 기술 중복성을 실시간 감지·조정하는 과학적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합니다. 과기정통부는 최근 '국가연구데이터법'을 만들면서도, 산업부와 중기부의 기업 연구데이터는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산업부의 요청에 의한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부 부처 간 칸막이는 이렇게 세세한 곳까지 할수 있는 모든 것을 가로막고 있는 상황입니다.
5. 남은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글로벌 AI 전쟁은 부처의 밥그릇 지키기나 행정 구역 나누기로는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자본과 인프라가 부족한 우리일수록, 법률적 결속으로 부처 간 벽을 허물고, 우리가 잘하는 모든 현장의 데이터 위에 역량을 총집결해야 합니다. 강력한 국가 R&D 법령을 제·개정하여, 정부 부처 간 칸막이를 과감하고 완전하게 부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AI의 미래는 없습니다. 2014년 정부가 신산업을 한 부처에 몰아주는 방식으로 혁신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이후, 우리는 여전히 부처별 칸막이 속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국가중점연구개발계획'으로 강력한 통합을 추진한 중국은 세계적 혁신국가가 되었습니다. 지금 당장 이를 추진하지 않으면, 우리의 마지막 보루인 메모리 반도체 산업마저도 중국에 뒤쳐지게 될까 매우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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