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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이홍 · 2026.09.01

[이홍]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어떻게 한국이 오늘날의 선진국이 되었을까. 높은 교육 수준과 근면 성실함도 중요하지만, 더 흥미로운 답은 국제질서의 판이 뒤집힐 때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는 데 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 한국은 정확히 다섯 번의 지각판 뒤집기를 타고 성장했다.

첫 번째 기회: 베트남전쟁(1964년)

첫 번째 도약은 1964년 베트남전쟁이었다. 냉전 시대 미국이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판을 뒤집을 때, 한국은 미국의 동맹으로서 대규모 병력을 파병했다. 군인들의 급여가 달러로 들어왔고, 군수 조달과 건설, 운송 서비스 등을 통해 한국은 막대한 달러를 벌었다. 단순한 외화 획득을 넘어 한국 기업들은 국제 계약 체결, 현지 인력 관리, 국제 기준에 맞춘 공사 수행 경험을 쌓았다. 이것이 다음 단계로의 발판이 되었다.

두 번째 기회: 중동 건설 붐(1970년대)

1970년대 중동 건설 붐이 터졌다. 배경에는 1971년 미국의 달러 금 태환 정지와 1973년 중동전쟁으로 촉발된 오일쇼크가 있었다. 석유 가격이 4배 폭등하자 미국은 중동 석유 확보에 나섰고, 중동 국가들은 안보를 지켜줄 국가가 필요했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달러 기반 석유 거래 협약, 즉 '페트로 달러'가 탄생한 배경이다. 중동에 넘쳐나는 달러는 인프라 구축으로 흘러 들었고, 한국은 기술과 노동력으로 이를 채워주며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플랜트와 대형 인프라 구축 경험을 쌓았다.

세 번째 기회: 플라자합의(1985년)

1980년대 미국의 우려는 소련을 눌렀더니 일본이 세계 2위 강자가 된 것이었다. 1985년 9월 미국이 주도한 플라자합의로 일본 엔과 독일 마르크가 급격히 절상되자 일본 제품들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다. 같은 해 10월 미국의 인텔이 반도체 시장에서 일본에 밀려 철수를 선언하자 미국은 1986년 일본과 반도체 협정을 체결해 일본 반도체 시장을 막았다. 이 공백을 채운 것이 삼성전자였다. 한국은 품질 관리, 대량 생산, 기술 추격 능력을 확보하며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했다.

네 번째 기회: 중국의 세계 경제 편입(2001년)

1992년 한중 수교는 미국이 1970년대부터 추진한 소련과 중국 분리 전략의 연장선이었다. 2001년 클린턴 정부가 중국을 WTO에 가입시키자, 한국은 중국의 생산 기술과 중간재 부족을 채웠다. 한국의 반도체, 석유화학, 디스플레이, 철강, 기계, 정밀부품이 생산 설비와 함께 중국으로 대량 수출되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1992년 8,126달러였던 한국의 1인당 GDP는 2014년 3만935달러까지 치솟았다.

다섯 번째 기회: 미중 공급망 분리(2025년~)

2025년 트럼프 2기 정부로 시작된 미중 공급망 분리는 한국에 또 다른 도약의 기회다. 중저가 산업에서는 한국 기업이 피해를 입지만, 첨단 분야에서는 다르다. 미국이 첨단 반도체 장비의 중국 판매를 막고 중국 첨단 제품의 미국 진입을 차단하면서 그 공백을 한국이 채우고 있다. 미중 대립이 지속되는 한 이 기회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비상의 패턴: "미국이 판을 뒤집고, 한국이 기회를 잡다"

한국 경제 성장사에는 분명한 패턴이 있다. 국제질서가 뒤바뀔 때마다 미국이 새로운 판을 짰고, 한국은 그 기회를 냉철한 판단과 실행력으로 잡았다. 베트남에서 중동으로, 중동에서 반도체로, 반도체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첨단 산업으로. 매번 한국은 시의적절하게 포지션을 바꿨다.

오늘날의 번영은 우연이 아니었다. 근면과 교육도 중요하지만, 글로벌 정세를 읽고 그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지혜가 한국 경제 성장의 진정한 원동력이었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한국이 다시 한 번 그 지혜를 발휘할 수 있는가. 이것이 앞으로의 관건이 될 것이다.

출처 : 국제신문

링크 : https://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260814.22018003226

본 내용은 저자의 허락으로 오이마켓 편집국이 축약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