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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칼럼] 트럼프의 과학경시…세계 기술패권의 판도가 바뀐다

곽재원 · 2026.09.04

[곽재원 칼럼] 트럼프의 과학경시…세계 기술패권의 판도가 바뀐다

2026년 8월 초, 미국 의회는 연간 1조 달러가 넘는 정부 보조금 심사 체계를 정치인들이 직접 검증하도록 개편하는 안을 발표했습니다. 전문가의 '동료평가'를 단순 조언으로 격하시키고 대통령 지명자가 최종 결정권을 갖도록 한 것입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구축된 '정부의 차별 없는 공공 기초과학 투자와 학문의 자율성'이라는 80년 전통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백악관은 이를 '80년 만의 대개혁'이라고 부르며 관료주의와 대학 기득권을 해체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참담합니다. 첫째, 10~20년 뒤 기술 혁신을 담당할 순수 기초과학 연구비가 대폭 삭감됩니다. 당장 수익이 나는 분야에만 자금이 몰리면서 기초 연구 생태계가 말라붙고 있습니다. 둘째, 과학의 정치화입니다. 연구자들이 '기후변화'나 '다양성' 같은 단어를 검열하고 정권의 이념에 맞지 않는 연구가 잘려나갈 위험이 있습니다. 학문의 자율성과 객관적 신뢰성이 사라집니다. 셋째, 외국인 STEM 연구자에 대한 비자 장벽 강화로 미국의 가장 큰 경쟁력인 글로벌 인재 흡수 효과가 파괴됩니다.

냉혹한 데이터가 이를 입증합니다. 일본 문부과학성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연구개발비는 2024년 97.1조 엔으로 미국(95.3조 엔)을 앞질렀습니다. 이는 단순한 순위 변화가 아닙니다. 중국은 이미 전체 논문 수(2017년), 고품질 논문 수(2018년), 최우수 논문 수(2019년)에서 미국을 추월했으며, 이제 연구비 투자 규모까지 앞지렀습니다. 역설적으로 미국의 첨단기술 제재가 중국 기업들의 독자 R&D 투자를 폭발시켰고, 중국은 국가주도형 질주로 기술 패권을 장악했습니다.

이 상황은 한국과 일본 같은 민주주의 기술강국에 실전적 과제를 던집니다. 한국은 R&D 투자액 기준 세계 5위지만 미중 격돌 속에서 피할 수 없는 근본적 전환에 직면했습니다. 한국의 생존 전략은 명확합니다.

첫째, 정치와 정권으로부터 독립된 '장기 기초연구 방화벽'을 구축해야 합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R&D 예산이 흔들리는 악순환을 끝내야 합니다. 미션형 전략기술은 신속하게 추진하되 순수 기초과학은 정치적 잣대 없이 장기 지원해야 합니다.

둘째, 미국이 폐쇄적 자국 우선주의로 내쫓는 글로벌 우수 인재를 흡수하는 '글로벌 R&D 블랙홀'이 되어야 합니다. 파격적 연구 환경과 정주 여건을 제공하여 세계 최고 두뇌를 유치해야 합니다.

셋째, 에너지·데이터·지역 거점이 결합된 독자적 제조업 R&D 생태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소프트웨어에 편중된 미국이나 규격화 물량 공세의 중국과 달리, 전력 공급과 AI 데이터 인프라, 산학연을 연계한 고도화된 제조업 기반 초격차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트럼프의 과학경시는 전 세계 기술 지형을 흔드는 거대한 위기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시스템이 휘청할 때 이를 기회로 삼아 스스로를 혁신한 자에게 새로운 패권을 허락했습니다. 정치적 파행을 넘어서는 학문의 자유와 정교한 국가 전략이 조화된 R&D 생태계. 그것이 미중 격돌의 격랑 속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가장 확실한 생존법입니다.

출처 : 아주경제

링크 : https://www.ajunews.com/view/20260809075748305

본 내용은 저자의 허락으로 오이마켓 편집국이 축약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