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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철 칼럼] 연구기관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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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내년도 연구개발 예산을 39조5,000억 원으로 확대했다. 현재 수준이 이어진다면 앞으로 3년 동안 100조 원이 훨씬 넘는 국민의 세금이 정부 R&D에 투입된다. AI를 비롯한 첨단기술 경쟁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만큼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예산 확대만큼 중요한 질문이 있다. 이 막대한 자금을 사용하는 공공연구기관은 3년 뒤 무엇으로 자신의 성과를 설명할 것인가.
최근 정부는 유사·중복 기능을 조정하고 효율성을 높이겠다며 공공기관 109곳을 감축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주요 공공연구기관들은 이번 개편의 중심 대상에서 비켜나 있다. 연구에는 장기간의 축적이 필요하고 실패 가능성도 있으므로 일반 공공기관과 같은 잣대로 통폐합을 논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연구과제 하나의 실패만으로 연구기관의 책임을 묻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연구개발에서는 도전적인 성과도 나오기 어렵다.
하지만 개별 연구의 실패와 기관 차원의 성과 부진은 구별해야 한다. 어떤 과제는 실패할 수 있지만, 한 연구기관이 수년간 상당한 예산과 인력을 사용하고도 산업과 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논문과 특허, 과제 수와 예산 집행률만 계속 늘었을 뿐 기업의 생산성, 국민의 안전과 삶의 질,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에 기여하지 못했다면 그 기관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질문받아야 한다.
공공연구기관을 기업처럼 단기 매출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기초연구, 연구인력 양성, 국가적으로 필요한 기술의 축적처럼 당장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역할도 분명히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각 기관은 자신의 고유한 임무와 국민에게 돌려줄 가치를 더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무엇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지, 민간이나 대학이 아니라 자신이 맡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3년과 10년 뒤 어떤 변화를 만들겠다는 것인지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
정부도 연구기관의 존속을 당연한 전제로 삼아서는 안 된다. 기관별 임무와 성과를 주기적으로 검증하고, 역할이 중복되면 통합하며, 임무를 달성했거나 필요성이 사라졌다면 기능 전환까지 논의해야 한다. 반대로 꼭 필요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기관에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지원을 보장해야 한다.
연구의 실패는 용인할 수 있다. 그러나 존재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연구기관까지 언제나 보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연구예산이 크게 늘어난 지금이야말로 공공연구기관 스스로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에 답해야 할 때다. 그 질문 없는 100조 원은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책임 없는 지출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