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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컬럼] 162조원 미래대응기금의 정치경제학

곽재원 · 2026.11.06

[곽재원 컬럼] 162조원 미래대응기금의 정치경제학

정부의 2027년도 예산안은 821조 원으로 사상 최대다. 그러나 규모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재정 운용 방식의 변화다. 그 중심에는 AI, 반도체, 첨단산업, 에너지 전환 등에 전략적으로 투자하고 경제 불확실성에도 대비하려는 162조 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이 있다. 이 기금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재정 권한을 어떻게 나눌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진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이 국가 차원의 전략 투자를 늘리는 상황에서 한정된 재원을 여러 사업에 조금씩 나눠 주는 방식으로는 미래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문제의식에는 일리가 있다. 문제는 기존 지방교부세 제도와의 관계다. 지방교부세는 내국세의 일정 비율을 지방에 주는 자율재원이다. 기금의 재원 조달 방식이 내국세 규모에 영향을 주면 지방 몫도 달라질 수 있고, 약 30조 원 교부세 감소 논란도 여기서 나왔다. 다만 실제 영향은 재원 구성과 법 개정 내용에 따라 달라지므로 검증이 필요하다.

그동안의 지방재정 운용도 효율적이지 않았다. 비슷한 산업단지와 관광시설을 경쟁적으로 짓고 성공 사례를 앞다퉈 베끼는 '나눠먹기식 배분'과 '베껴쓰기식 정책' 때문에 정책이 획일화됐다. 여기에는 획일적인 국고보조·공모사업으로 지방의 선택을 제약한 중앙정부의 책임도 있다. 그렇다고 지방의 비효율을 고친다는 이유로 권한을 중앙에 과도하게 몰아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해법은 역할 분담이다. 반도체 클러스터, AI 데이터센터, 초광역 전력망처럼 큰 사업은 중앙이 맡는다. 인재 양성, 중소기업 혁신, 생활서비스처럼 현장을 잘 아는 쪽이 유리한 분야는 지방이 맡는다. '5극3특' 국토발전 전략 역시 지역마다 비교우위를 살려야 하며, 지역이 스스로 고른 전략을 국가가 지원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정치적 변수도 있다. 호남권 AI·반도체 구상처럼 큰 투자는 경제적 타당성으로 평가해야 하지만, 2028년 총선을 앞두고는 선거용이라는 해석이 붙을 수 있다. 이를 피하려면 사업 선정 기준, 지역별 배분 원칙, 재원 조달 계획을 공개하고 국회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민간의 투자 구상과 확정된 재정지출도 구분해야 한다.

미래대응기금은 재정민주주의의 시험대다. 기금은 일반회계보다 행정부의 재량이 크기 때문에 성과를 정기적으로 공개하고 국회가 실질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지방정부가 투자 방향 결정에 참여하는 협력적 거버넌스와 재정이 취약한 지역의 기본 행정서비스를 지키는 보완장치도 함께 필요하다.

지방재정의 나눠먹기를 고치는 것이 중앙재정의 독점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162조 원이 갈등의 씨앗이 될지, 중앙과 지방이 함께 미래를 설계하는 출발점이 될지는 이제 국회가 답해야 할 질문이다.

출처 : 저스트이코노믹스

링크 : https://www.justeconomix.com/ko-kr/articles/154098

본 내용은 저자의 허락으로 오이마켓 편집국이 축약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