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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이 바꾼 역사와 문화

<제20화> 점원이 사라진 가게 — 장바구니의 발명

임윤철 · 2026.07.31

<제20화> 점원이 사라진 가게 — 장바구니의 발명

우리는 매일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습니다. 마트에서는 카트에, 쇼핑 앱에서는 화면 속 장바구니에. 그런데 100여 년 전만 해도 손님은 가게의 물건에 손도 댈 수 없었습니다. 이 당연한 풍경이 뒤집힌 날, 1916년 미국 멤피스로 가 보겠습니다.

그 시절의 식료품점은 이랬습니다. 손님이 계산대 앞에서 살 것의 목록을 부르면, 점원이 뒤쪽 선반을 오르내리며 하나씩 꺼내 와 저울에 달아 종이에 싸 주었습니다. 손님 한 명에 점원 한 명이 매달리니 줄은 길었고, 값은 외상 장부에 적혔습니다. 1916년 9월 어느 날, 멤피스의 주부가 새로 열었다는 가게 피글리 위글리에 들어섭니다. 회전문을 밀고 들어서자 점원이 바구니부터 건넵니다. 매장 안에는 물건을 꺼내 줄 점원이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통로 양쪽 선반에 상품들이 가격표를 붙인 채 손 닿는 높이로 늘어서 있습니다. 주부가 얼떨떨해 묻습니다. "물건을 제 손으로 골라도 되나요?" 출구 쪽 계산대의 직원이 웃으며 답합니다. "그러시라고 만든 가게입니다." 그날 주부는 처음으로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장을 봤습니다.

방금 보신 장면은 실존하는 기록을 근거로 상상해 본 것입니다. 1916년 9월 멤피스에 문을 연 클래런스 손더스의 피글리 위글리는 세계 최초의 셀프서비스 식료품점으로 꼽힙니다. 손더스는 이듬해 회전문과 일방통행 통로, 출구 계산대로 이어지는 매장 구조를 '셀프서비스 상점'이라는 이름의 미국 특허로 등록했습니다. 가게 구조 자체가 발명품이 된 것입니다. 점원 인건비가 줄어든 만큼 값을 내리자 가게는 폭발적으로 성장해 몇 년 만에 체인 1,200여 곳으로 불어났습니다. 괴상한 가게 이름의 뜻을 묻는 사람들에게 손더스는 이렇게 답했다고 전해집니다. "바로 그 질문을 하게 만들려고 지은 이름이오." 그러나 반전이 있습니다. 손더스는 1923년 뉴욕 증시에서 자기 회사 주식을 놓고 공매도 세력과 전쟁을 벌이다 파산했습니다. 재기를 노리며 만든 것이 동전을 넣으면 상품이 나오는 완전 자동화 무인 상점 키두즐이었지만, 시대를 반세기쯤 앞선 이 실험은 결국 실패로 끝났습니다.

자, 오늘의 결론입니다. 기술은 세상의 장면과 장면을 바꿉니다. 점원이 물건을 꺼내 주기를 기다리던 장면은, 손님이 직접 고르고 담는 장면으로 바뀌었습니다. 셀프서비스의 본질은 일의 이전이 아니라 권한의 이전입니다. 고르는 권한을 손님에게 넘기자 손님은 상품을 직접 만지고 비교하는 협상력을 얻었고, 줄 서지 않는 편리함과 낮아진 가격까지 따라왔습니다. 점원의 추천이 사라진 자리는 포장과 상표가 대신 말하게 되었으니, 브랜드의 시대도 이 선반에서 시작된 셈입니다. 온라인 쇼핑의 '장바구니에 담기'는 손더스가 건넨 그 바구니의 직계 후손이고, 계산대마저 없앤 무인 매장은 그가 못다 이룬 키두즐의 완성입니다. "너는 뭐 먹고 살거니?"의 스무 번째 힌트는 이것, 손님에게 권한을 넘기는 장사는 흥하고, 권한을 쥐고 놓지 않는 장사는 줄부터 길어진다는 것입니다. 철이네 오이마켓이 다음 장면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사진: Library of Congress (퍼블릭 도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