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바꾼 역사와 문화
<제21화> 우편으로 배달된 백화점 — 시골 소년의 소원 책

우리는 매장에 가는 대신 화면을 스크롤해 물건을 고르고, 며칠 뒤 문 앞에서 상자를 받습니다. 물건을 보러 가지 않고 물건이 오게 하는 이 발상의 원조는, 130년 전 미국 시골로 배달된 500쪽짜리 책이었습니다. 1897년 미네소타의 어느 농가로 가 보겠습니다.
겨울 저녁, 눈에 갇힌 농가의 거실. 온 가족이 램프 아래 모여 두툼한 책 한 권을 넘기고 있습니다. 우편으로 도착한 시어스 카탈로그입니다. 시계, 재봉틀, 난로, 쟁기, 기타, 안경, 심지어 피아노까지 그림과 가격이 빼곡합니다. 어머니는 재봉틀 페이지를 몇 번이고 다시 펴 보고, 아이는 장난감 페이지에 코를 박았습니다. 아버지는 마을 상점 주인이 부르던 값의 절반쯤 되는 난로 가격에 밑줄을 긋고 주문서를 씁니다. 몇 주 뒤, 기차역에 가족 앞으로 소포가 도착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책을 소원 책이라고 불렀습니다. 가게 하나 없는 초원의 마을에서, 이 책 한 권이 곧 백화점이었기 때문입니다.
방금 보신 장면은 실존하는 기록을 근거로 상상해 본 것입니다. 철도역 직원이던 리처드 시어스는 1886년 보석상이 인수를 거부한 시계 화물을 헐값에 사서 동료 역무원들에게 되판 것을 계기로 통신판매업에 뛰어들었고, 1888년 첫 카탈로그를 찍었습니다. 카탈로그는 곧 500쪽이 넘는 만물책으로 자라 수백만 부씩 뿌려졌습니다. 표지의 구호는 "지구에서 가장 싼 공급처", 모든 페이지에 흐르는 약속은 "만족하지 못하면 돈을 돌려드립니다"였습니다. 시골 무료 배달과 소포 우편 제도가 깔리자 사업은 날개를 달았고, 1908년부터는 조립식 주택까지 우편으로 팔아 7만 채가 넘는 집이 카탈로그로 지어졌습니다. 이 책은 뜻밖의 역할도 했습니다. 인종차별이 심하던 시절, 동네 상점에서 홀대받던 흑인 고객들도 우편 주문 앞에서는 똑같은 손님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반전이 있습니다. 시어스는 1993년 카탈로그를 접었고, 2018년 파산 보호를 신청했습니다. 자신이 발명한 원리를 화면으로 옮긴 후손, 이커머스에 밀린 것입니다.
자, 오늘의 결론입니다. 기술은 세상의 장면과 장면을 바꿉니다. 시골 사람이 마을 상점 하나의 물건과 값에 매여 살던 장면은, 대도시와 똑같은 상품을 똑같은 값에 고르는 장면으로 바뀌었습니다. 카탈로그의 본질은 시장의 배달입니다. 손님이 시장에 오지 못하면 시장을 손님에게 보내면 된다는 발상이, 철도와 우편이라는 인프라를 만나 현실이 된 것입니다. 종이에 인쇄된 가격표는 지역 독점을 깨는 협상력이 되었고, 만족 보장 환불은 얼굴 없는 거래에 신뢰를 실어 나르는 장치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쇼핑 앱은 이 소원 책의 직계 후손입니다. 다만 시어스의 최후가 가르쳐 주듯, 시장을 배달하는 방법은 시대마다 바뀝니다. "너는 뭐 먹고 살거니?"의 스물한 번째 힌트는 이것, 시장에 오지 못하는 손님을 찾아가는 자가 새 시장을 얻고, 찾아가기를 멈춘 자는 그 시장을 잃는다는 것입니다. 철이네 오이마켓이 다음 장면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사진: 1,995달러와 무료 설계도 (퍼블릭 도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