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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철 칼럼] 젠슨 황의 ‘피시방 쇼’에 취할 때가 아니다

임윤철 발행인 · 2026.06.11

[임윤철 칼럼] 젠슨 황의 ‘피시방 쇼’에 취할 때가 아니다

세계 시가총액 1위를 다투는 제국의 설계자 젠슨 황이 우리나라 피시방을 찾아 게이머들과 소통했다. 언론은 ‘소탈한 천재의 친근한 리더십’이라며 찬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냉정하게 자문해 보자. 그가 정말 우리나라의 피시방 문화가 신기해서 그곳을 찾았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것은 철저하게 계산된 대중 마케팅이자, 우리나라 시장을 향한 고도의 ‘쇼(Show)’다. 이 화려한 무대 뒤편, 젠슨 황과 마주 앉아 카메라를 향해 억지 미소를 지어야 했던 우리 재벌 대기업 총수들의 속마음은 과연 유쾌했을까? 당장 최신 GPU 한 장이 급해 줄은 서고 있지만, 그들의 웃음 뒤에는 거대한 독점 플랫폼에 종속될지 모른다는 깊은 답답함이 숨어 있다.

비즈니스는 철저한 거래다. 젠슨 황이 우리나라를 찾아 던지는 제안들의 이면에는 반드시 요구하는 반대급부가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명확하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축적해 온 제조 공장, 자동차, 조선소의 생생한 ‘물리적 데이터’를 흡수하여 자신들의 ‘월드 모델’과 ‘피지컬 AI’ 생태계에 엔비디아의 칩과 소프트웨어 카드를 깊숙이 박아 넣는 것이다. 우리가 젠슨 황의 공짜 홍보 영상을 찍어주고 전 세계에 열렬히 배포하는 자발적 들러리로 전락할 때가 아니다. 이제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우리나라 특유의 DNA인 ‘빨리빨리’ 정신을 부활시켜 우리만의 독자적인 방어선과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첫째, ‘온프레미스(On-Premises) AI’로 데이터 주권을 잠가라

엔비디아가 GPU 공급과 소프트웨어 협력을 한 묶음으로 제안할 때, 우리의 가장 강력한 대응 무대는 ‘온프레미스 AI(사내 구축형 AI)’ 시스템이어야 한다. 클라우드를 통해 우리의 핵심 제조 데이터와 비즈니스 로직이 엔비디아의 소프트웨어 스택으로 흘러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기술 주권을 통째로 빼앗기는 데이터 하청국으로 주저앉는다. 핵심 데이터와 모델 학습은 반드시 우리 기업의 내부 서버와 독립된 인프라, 즉 온프레미스 환경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엔비디아로부터 필요한 칩과 하드웨어는 철저하게 돈을 주고 ‘사오면’ 그만이다. 딱 거기까지다. 그 이상 우리의 핵심 자산인 제조 데이터의 통제권과 모델 가중치(Weights)의 소유권은 단 한 조각도 저들에게 내주어서는 안 된다. 칩은 철저히 도구로 부리되, 핵심 뇌세포는 우리의 폐쇄적인 온프레미스 영토 안에서 길러내야 한다.

둘째, 엔비디아의 결박을 푸는 ‘3대 우회·돌파 전략’

그렇다면 답답한 형국에 갇힌 우리 재벌 총수들과 기업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칼을 빼 들어야 할까? 엔비디아라는 거대한 성벽을 우회하고 마침내 돌파하기 위해 우리가 당장 실행해야 할 세 가지 핵심 전략이 있다.

- 저전력 추론용 NPU 칩 개발의 가속화

거대 모델을 새로 학습시키는 일만큼이나 기업 업무에 맞춰 빠르고 전력을 적게 쓰는 ‘추론’의 시대가 오고 있다. 이미 학습된 모델을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구동하는 추론 시장에서는 굳이 엔비디아의 비싸고 전기를 많이 먹는 GPU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에이전트(Agent) 시대가 본격화될수록 저전력 고효율의 NPU 칩 자리는 커진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이 추론용 NPU 기술 개발과 미세공정 최적화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이유다.

- 글로벌 반(反)엔비디아 전선과의 적극적 연합

독점 권력에 대항하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 기업들만의 숙제가 아니다. 전 세계 빅테크 기업들과 아시아, 유럽의 제조 강국들 역시 엔비디아 통제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체 칩과 오픈소스 생태계를 꾸리고 있다. 엔비디아와 경쟁하는 해외 플랫폼, 글로벌 반도체 설계 및 파운드리 회사들과 전략적 ‘반(反)엔비디아 연합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칩 수급처를 다변화하고 생태계의 판도를 다극화해야 우리의 협상력이 올라간다.

-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인수 후 개발(A&D)’

그동안 우리 대기업들은 국내 혁신 기술을 자체 개발하거나 단순히 부품을 납품받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속도가 생명인 AI 전쟁터다. 답답해하는 재벌 총수들은 눈을 돌려 기술력 있는 우리나라 AI 및 NPU 스타트업들을 깊숙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가능성 있는 숨은 진주들을 과감하게 인수 후 개발(A&D, Acquisition & Development)하는 방식으로 품어야 한다. 대기업의 거대한 자본과 제조 데이터, 그리고 스타트업의 기민한 기술 DNA가 결합할 때, 비로소 엔비디아에 맞설 강력한 독자 엔진이 완성된다.

‘빨리빨리’ DNA로 최고의 우리나라를 만들자

AI 전장의 시계는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흘러간다. 우리가 엔비디아의 눈치를 보고 뉴스의 들러리로 서 있는 사이, 독자적인 생태계를 만들 고귀한 시간과 기회비용은 메말라가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 한강의 기적을 일구었던 대한민국 특유의 무서운 실행력이다.

망설일 시간이 없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그리고 정부가 삼각편대를 이뤄 생태계의 한쪽에서는 최고의 우리나라를 만들기 위해 빨리빨리 움직여야 한다. 기술 주권을 빼앗긴 화려한 들러리에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엔비디아의 칩을 철저히 레버리지 삼아 세계 최고 수준의 독자적 피지컬 AI 강국을 완성할 것인가.

정신을 바짝 차린 냉철한 거래, 온프레미스를 통한 데이터 방어, 그리고 유망 스타트업 인수를 통한 전방위적 속도전만이 우리나라 AI의 미래를 구원할 유일한 답이다. 속도가 곧 주권이다. 함성에 취하지 말고 실리를 향해 광속으로 전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