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바꾼 역사와 문화
<'100년기업' 제1화> 장부 맨 위에 적힌 여덟 글자 - 프라토의 상인 프란체스코 다티니

14세기 이탈리아 프라토. 상인 프란체스코 다티니는 자신이 쓰는 모든 장부의 맨 위에 똑같은 문구를 적어 넣었다. "신과 이윤의 이름으로." 가난한 술집 주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열다섯 살에 홀로 아비뇽으로 떠나, 이후 서른다섯 해에 걸쳐 무기·갑옷·미술품·양모·사프란·가죽·비단까지 다루며 거상이 되었다. 피렌체·바르셀로나·아비뇽 등 여러 도시에 지점을 두고 무역을 했다.
그 시절 상인들의 가장 큰 무기는 자본이 아니라 신용이었다. 얼굴을 맞대지 않고 편지로 거래를 약속해야 했던 시대에, 신용을 보증해줄 담보나 신용등급 같은 제도는 없었다. 있는 것은 오직 "이 사람이 전에도 약속을 지켰는가"라는 개인적 기록뿐이었다.
다티니는 거래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기록하고, 그 기록을 상대 지점에도 똑같이 보내 서로 대조할 수 있게 하는 습관을 평생 지켰다. 그는 죽으면서 자신의 모든 사업 문서를 없애지 말고 보존하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그 덕분에 15만 통에 이르는 편지와 5백 권이 넘는 장부, 보험증서와 환어음까지 지금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후대 역사가들은 그를 "신용이라는 무형자산을 문서로 쌓은 최초의 상인"이라고 부른다.
다티니가 지킨 것은 하나였다. 무엇을 팔든, 어느 도시와 거래하든, 절대 거짓을 적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하나를 지킨 덕분에, 그는 만나본 적도 없는 유럽 전역의 상인들과도 거래할 수 있었다. 술집 주인의 아들로 태어나, 만나본 적 없는 도시의 상인들에게까지 신용을 산 것이다.
6백 년도 더 전에, 한 상인은 이미 알고 있었다. 사업에서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 하나를 정해두면, 그것이 오히려 사업을 더 멀리, 더 낯선 곳까지 데려간다는 것을. 그런데 그 "하나"는 대체 어떻게 골라야 하는 걸까. 아무거나 정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출처: Iris Origo, 『The Merchant of Prato: Francesco di Marco Datini, 1335–1410』(Alfred A. Knopf, 1957) — 서평·서지정보: Journal of Economic History(Cambridge Core, https://www.cambridge.org/core/journals/journal-of-economic-history/article/abs/merchant-of-prato-francesco-di-marco-datini-13351410-by-iris-origo-new-york-alfred-a-knopf-1957-pp-xxii-415-750/BA7D2B815C6917EBA24C3D5060361F4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