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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기업' 제6화> "재미있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게" - 미래를 먼저 발명한 회사

임윤철 · 2026.08.22

<'100년기업' 제6화> "재미있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게" - 미래를 먼저 발명한 회사

1975년, 코닥의 스물네 살 엔지니어 스티븐 새슨이 세계 최초의 디지털카메라 시제품을 만들었다. 토스터만 한 크기에, 흑백 영상을 카세트테이프에 저장하는 데 23초가 걸리는 투박한 물건이었다. 그러나 필름 없이 사진을 찍는 기계 — 코닥의 본업을 통째로 지울 수도 있는 발명이 코닥 자신의 연구실에서 태어난 것이다.

새슨이 훗날 전한 경영진의 반응은 한 문장으로 남아 있다. "재미있군. 그런데 이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게."

당시 코닥은 미국 필름 시장의 90퍼센트, 카메라 시장의 85퍼센트를 쥔 제국이었다. "코닥 모먼트"라는 말이 일상어로 쓰일 만큼 사진 그 자체였다. 그러니까 이 회사는 디지털의 도래를 몰랐던 것이 아니다. 세상 누구보다 먼저, 가장 정확하게 알았다.

그러나 고마진 필름 사업이 잠식될 것이 두려워 자신의 발명을 사내에서 억눌렀다. 2000년대 들어 디지털 전환이 본격화됐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2012년 1월, 124년 된 이 회사는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흥미로운 반전은 새슨 개인에게 있다. 회사가 묻어버렸던 그 발명은 훗날 정당하게 평가받았다. 2009년, 새슨은 디지털카메라를 발명한 공로로 미국 국가기술혁신훈장(National Medal of Technology and Innovation) 수상자로 선정됐고, 2010년 11월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훈장을 받았다. 발명을 억누른 회사는 파산했지만, 그 발명을 한 사람은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은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먼저 미래를 발명한 회사가, 세상에서 가장 늦게 그 미래로 걸어 들어갔다. 알면서도 움직이지 못했다면 — 그 사이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출처: Steve Sasson, The New York Times 기고(2015), Wikipedia "Steven Sasson"(https://en.wikipedia.org/wiki/Steven_Sasson), National Science and Technology Medals Foundation(https://nationalmedals.org/laureate/steven-sasson/), World Economic Forum "Leading innovation through the chicanes"(2016, https://www.weforum.org/stories/2016/06/leading-innovation-through-the-chicanes/).

사진: Matthew Trump, "Kodak Building in Rochester, NY", Wikimedia Commons (CC BY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