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바꾼 역사와 문화
<제30화> 왜 새 차는 사는 순간 값이 떨어질까 — 레몬 시장의 비밀

멀쩡해 보이는 중고차인데도 우리는 어딘가 숨은 하자가 있을까 봐 값을 깎습니다. 새 차조차 사는 순간 값이 뚝 떨어지죠. 이 흔한 찜찜함의 정체를 수학으로 밝혀 노벨상까지 받은 이야기로 가 보겠습니다. 1970년의 한 경제학 논문입니다.
한 중고차 시장을 떠올려 봅니다. 겉모습이 똑같은 두 대의 차가 있습니다. 하나는 멀쩡한 차, 하나는 겉만 멀쩡하고 속은 고장투성이인 차, 미국에서 신맛 나는 과일에 빗대어 '레몬'이라 부르는 불량차입니다. 문제는 그 차이를 파는 사람은 알지만 사는 사람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는 사람은 생각합니다. 저게 좋은 차인지 레몬인지 모르니, 딱 중간값만 부르자. 그러자 멀쩡한 차의 주인은 화를 냅니다. 내 좋은 차를 헐값에 넘길 수는 없다며 시장을 떠나 버립니다. 좋은 차가 빠져나가자 시장에는 레몬의 비율이 높아지고, 눈치챈 구매자는 값을 더 깎고, 그러면 그나마 괜찮던 차들도 또 떠납니다. 이 악순환의 끝에서 시장에는 레몬만 남고, 결국 시장 자체가 무너집니다.
방금 보신 것은 경제학자 조지 애컬로프가 1970년에 발표한 논문 '레몬 시장'의 논리를 풀어 본 것입니다. 이 짧은 논문의 운명이 재미있습니다. 애컬로프가 원고를 보내자 세 곳의 저명한 학술지가 잇달아 거절했습니다. 어떤 곳은 너무 사소한 주제라고, 어떤 곳은 만약 이게 맞다면 경제학이 통째로 틀린 셈이라 실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겨우 실린 이 논문은 훗날 경제학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글이 되었고, 그는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이공계 출신이라면 무릎을 칠 대목이 있습니다. 애컬로프의 통찰은 결국 신호와 잡음의 문제였거든요. 좋은 차라는 신호가 잡음에 묻혀 전달되지 않으면 시스템 전체가 오작동한다는, 통신공학과 똑 닮은 구조입니다. 그가 증명한 것은 정보의 비대칭, 즉 파는 쪽과 사는 쪽이 아는 것이 다르면 아무리 서로 원하는 거래라도 시장이 붕괴한다는 사실입니다. 돌아보면 우리가 이 시리즈 4부에서 본 발명들이 전부 이 붕괴를 막는 장치였습니다. 함무라비의 벌금, 도공의 도장, 로이즈의 보험, 복식부기, 미쉐린의 별. 전부 레몬을 걸러내 시장을 살리는 도구였던 겁니다.
자, 오늘의 결론입니다. 기술은 세상의 장면과 장면을 바꿉니다. 서로 몰라서 거래가 깨지던 장면은, 정보의 격차를 메우는 장치가 등장할 때마다 거래가 되살아나는 장면으로 바뀌었습니다. 중고차의 성능 보증서, 판매자 평점, 이력 조회 서비스가 오늘날 그 격차를 메웁니다. 신뢰 장치의 본질은 파는 사람만 아는 것을 사는 사람도 알게 만드는 것, 곧 정보의 평준화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5차산업혁명 시대의 거대한 기회입니다. AI가 상품과 판매자의 숨은 진실을 낱낱이 밝혀 정보의 비대칭을 무너뜨리면, 레몬은 설 자리를 잃고 정직한 판매자가 이깁니다. "너는 뭐 먹고 살거니?"의 서른 번째 힌트는 이것, 사람들이 몰라서 못 하던 거래를 알게 해서 성사시키는 자리에 서라는 것입니다. 철이네 오이마켓이 다음 장면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사진: CC BY 3.0, via Wikimedia Commons (CC BY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