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바꾼 역사와 문화
<제12화> 뉴턴의 계산이 만든 돈의 표준 — 금본위제의 탄생과 최후

환율 앱을 열면 1달러의 값이 매초 출렁입니다. 그런데 한때 세계 주요국의 돈값이 금 몇 그램으로 딱 고정되어 몇십 년씩 꿈쩍도 않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 표준의 출발점에 물리학자가 서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1717년 런던으로 가 보겠습니다.
1717년 9월, 런던탑 성벽 안의 왕립조폐국. 백발의 국장이 저울과 시금 결과지를 앞에 놓고 보고서를 씁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세운 아이작 뉴턴, 일흔넷의 나이에 그는 사과 대신 금화를 계산하고 있습니다. 골칫거리는 금과 은의 교환 비율입니다. "유럽보다 우리 금값이 후하니, 사람들이 금을 가져와 긴네아 금화로 바꾸고, 은화는 녹여서 동양으로 실어 나가는구나." 그는 펜을 들어 결론을 적습니다. 긴네아 금화의 값을 은화 21실링으로 고정할 것. 재무부는 그대로 시행합니다. 그러나 대학자의 계산에도 오차는 있었습니다. 금은 여전히 조금 후하게, 은은 조금 박하게 매겨진 것입니다. 은화는 계속 나라 밖으로 새어 나갔고, 영국인의 주머니에는 금화만 남았습니다. 누구도 선언하지 않았지만, 영국은 그렇게 세계 최초로 금본위제의 나라가 되어 갔습니다.
방금 보신 장면은 영국 재무부에 제출된 뉴턴의 1717년 보고서를 근거로 상상해 본 것입니다. 계산 착오가 만든 관행을 영국은 1816년 주화법으로 공식화했고, 19세기 후반 독일, 프랑스, 미국, 일본이 차례로 합류하면서 세계는 처음으로 하나의 잣대로 돈을 재게 됐습니다. 이공계식으로 말하면 화폐의 국제 표준화입니다. 파운드와 달러와 엔이 각자 금 몇 그램인지 정해지자 환율은 자동으로 고정됐고, 환위험이 사라진 바닷길로 무역과 투자가 폭발했습니다. 한편 그 뉴턴도 돈 앞에서는 인간이었습니다. 1720년 남해회사 거품에 투자했다가 큰돈을 잃었고, 천체의 운동은 계산해도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더라는 탄식이 그의 말로 전해질 정도입니다. 그리고 반전은 표준의 최후에 있습니다. 전쟁 비용과 대공황 앞에서 각국은 금 잣대를 하나둘 내려놓았고, 1971년 미국 닉슨 대통령이 달러와 금의 교환 창구를 닫으면서 금본위제는 완전히 끝났습니다. 그날 이후 세계의 돈을 보증하는 것은 금괴가 아니라 약속과 신뢰뿐입니다.
자, 오늘의 결론입니다. 기술은 세상의 장면과 장면을 바꿉니다. 나라마다 돈의 잣대가 달라 환전상 앞에서 실랑이하던 장면은, 금이라는 공통 표준 위에서 지구 반대편과 안심하고 계약하는 장면으로 바뀌었습니다. 표준은 검증과 흥정의 비용을 없애는 편리함이고, 표준을 정하는 나라가 곧 기축통화라는 협상력을 쥡니다. 다만 역사는 경고도 남겼습니다. 너무 단단한 잣대는 위기 앞에서 휘지 못하고 부러진다는 것. 5차산업혁명 시대에도 달러, 디지털 화폐, 그리고 '디지털 금'을 자처하는 자산들이 다음 표준의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습니다. "너는 뭐 먹고 살거니?"의 열두 번째 힌트는 이것, 표준을 만드는 자가 시장을 지배하고, 표준이 바뀌는 순간을 읽는 자가 다음 시장을 먼저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철이네 오이마켓이 다음 장면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사진: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CC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