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바꾼 역사와 문화
<제13화> 지갑 없이 저녁을 산 남자 — 신용카드의 탄생

지갑을 두고 나와도 이제는 큰일이 아닙니다. 휴대폰 하나, 카드 한 장이면 되니까요. 그런데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 지갑을 깜빡한 어느 저녁 식사였다는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1949년 가을 밤, 뉴욕 맨해튼으로 가 보겠습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근처의 식당 메이저스 캐빈 그릴. 사업가 프랭크 맥나마라가 거래처 손님들을 대접하고 있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계산서가 왔을 때,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립니다. 양복을 갈아입으며 지갑을 두고 온 것입니다. 결국 아내가 달려와 몰래 계산을 치렀지만,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는 분을 삭이지 못합니다. "내 신용이 왜 지갑 속 현금에 갇혀 있어야 하지? 나라는 사람 자체가 지불 능력인데." 이듬해인 1950년 2월, 그는 동업자와 함께 같은 식당으로 돌아옵니다. 식사를 마친 그가 웨이터에게 내민 것은 현금이 아니라 판지로 만든 작은 카드 한 장. 웨이터는 갸웃하면서도 카드에 적힌 번호를 옮겨 적고 서명을 받습니다. 훗날 '최초의 만찬'이라 불리게 된, 역사상 첫 신용카드 결제의 순간입니다.
방금 보신 장면은 다이너스 클럽의 공식 창립 기록을 근거로 상상해 본 것입니다. 1950년 뉴욕의 식당들을 가맹점으로 시작한 이 판지 카드는 1년여 만에 회원 4만여 명을 모으며 폭발적으로 자랐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유쾌한 반전이 있습니다. 훗날 초기 임원은 지갑을 깜빡했다는 저 유명한 일화가 홍보를 위해 다듬어진 이야기였다고 회고했습니다. 신용카드는 출생 설화부터 마케팅이었던 셈입니다. 더 재미있는 기록도 있습니다. '크레디트 카드'라는 말 자체는 이미 1888년 소설가 에드워드 벨러미가 유토피아 소설 『뒤돌아보며』에서 만들어낸 단어입니다. 소설 속 상상이 62년 뒤에 현실이 된 것이죠. 그리고 1958년,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캘리포니아 프레즈노의 주민 6만 명에게 신청받지도 않은 카드를 무더기로 우편 발송하는 '프레즈노 드롭'을 감행합니다. 연체와 사기로 아수라장이 됐지만, 이 무모한 실험이 살아남아 오늘의 비자카드가 되었습니다.
자, 오늘의 결론입니다. 기술은 세상의 장면과 장면을 바꿉니다. 외상은 원래 단골에게만, 동네 가게의 장부 안에서만 통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용카드는 그 신뢰를 표준화해 들고 다니게 만들었고, 낯선 도시의 낯선 가게에서도 "이 사람은 갚을 사람"이라는 보증이 통하는 장면을 열었습니다. 현금 없이 다니는 편리함에, 미래의 소득으로 오늘 소비하는 구매력까지 얹어 주었으니 소비자의 협상력도 커졌습니다. 실크로드 상인들의 평판 네트워크가 5화의 이야기였다면, 신용카드는 그 평판을 지갑 크기로 접어 넣은 발명입니다. 5차산업혁명 시대에는 결제라는 행위 자체가 사라지고, 걸어 나가면 계산이 끝나는 상점과 얼굴이 곧 카드인 시대가 옵니다. "너는 뭐 먹고 살거니?"의 열세 번째 힌트는 이것, 사람들의 신용을 더 가볍게, 더 멀리 들고 다니게 만드는 사업은 언제나 폭발했다는 것입니다. 철이네 오이마켓이 다음 장면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사진: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CC BY-SA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