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바꾼 역사와 문화
<제14화> 세상에서 가장 비싼 피자 — 국가 없는 돈의 실험

세상에서 가장 비싼 피자를 아십니까? 배달된 날의 값은 우리 돈 4만 원 남짓, 그러나 치른 값은 훗날 수천억 원이 된 피자 두 판입니다. 암호화폐 동네에서 해마다 5월 22일을 '피자 데이'로 기념하는 이유죠. 2010년 미국 플로리다로 가 보겠습니다.
2010년 5월, 잭슨빌의 프로그래머 라즐로 하니예츠가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립니다. "피자 두 판에 1만 비트코인을 드리겠습니다. 남은 것은 내일 먹게 큰 판으로요." 비트코인이라는 신생 디지털 화폐를 컴퓨터로 캐고 있던 그는, 이 돈으로 실제 물건을 살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나흘 동안 아무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1만 비트코인은 채굴 전기료나 겨우 건질 41달러어치였으니까요. 닷새째, 열아홉 살 청년이 응답합니다. 청년은 카드로 파파존스 피자 두 판을 주문해 라즐로의 집으로 보냈고, 라즐로는 약속대로 1만 비트코인을 보냈습니다. 그는 아이들과 피자를 먹는 사진을 게시판에 자랑스레 올렸습니다. 국가가 만들지 않은 돈으로 실물을 산, 역사상 첫 거래로 꼽히는 장면입니다.
방금 보신 장면은 지금도 인터넷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게시글과 사진을 근거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 실험의 설계도는 2년 전에 나왔습니다. 2008년 10월 31일,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암호학자들의 메일링 리스트에 아홉 쪽짜리 논문을 올립니다. 은행 없이 개인끼리 주고받는 전자 화폐의 설계도였습니다. 이듬해 1월 3일 첫 블록을 만들며 사토시는 그날 자 런던 타임스의 머리기사 한 줄을 코드 안에 영구히 새겼습니다. "재무장관, 은행에 두 번째 구제금융 임박." 금융위기로 국가가 돈을 찍어 은행을 구하던 바로 그 순간, 국가 없는 돈을 만든 이유를 서명처럼 남긴 것입니다. 원리는 이 시리즈의 독자라면 익숙합니다. 장부를 한 곳이 아니라 전 세계 수만 대의 컴퓨터가 나눠 갖고 10분마다 대조하니 위조가 어렵고, 발행량은 2,100만 개로 코드에 못 박았으니 교자를 남발하던 조정도, 금 창구를 닫던 대통령도 없습니다. 그리고 반전. 사토시는 2011년 홀연히 사라졌고, 그의 지갑에 잠든 약 100만 비트코인은 지금까지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라즐로는 인터뷰마다 웃으며 말합니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누군가는 첫 거래를 해야 했다고.
자, 오늘의 결론입니다. 기술은 세상의 장면과 장면을 바꿉니다. 돈의 보증인은 사자 도장을 찍던 왕에서 중앙은행으로, 그리고 이제 수학과 알고리즘으로 자리를 넓혀 왔습니다. 비트코인이 최후의 승자가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값이 널뛰어 아직 잣대 노릇은 서툴고, 결제의 편리함도 낙제점입니다. 그러나 국가를 거치지 않겠다는 협상력의 욕망을 자극했기에 시장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2화의 교자가 가르쳐준 대로, 이 실험의 운명도 결국 신뢰 설계에 달려 있습니다. 5차산업혁명 시대에 AI 에이전트들이 서로 값을 치르게 될 때, 그들이 쓸 돈의 보증인은 누구여야 할까요. "너는 뭐 먹고 살거니?"의 열네 번째 힌트는 이것, 돈의 보증인이 바뀌는 장면은 한 세기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라는 것입니다. 철이네 오이마켓이 다음 장면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사진: 유명한 비트코인 피자의 제조점 / 최초의 비트코인 구매의 고향 (CC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