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바꾼 역사와 문화
<제16화> 소크라테스는 왜 시장을 어슬렁거렸나 — 광장이 곧 시장

쇼핑몰에 물건만 사러 가는 사람은 드뭅니다. 구경도 하고, 밥도 먹고, 사람도 만나죠. 시장은 원래부터 그런 곳이었습니다. 3부 '시장이라는 무대'의 첫 장면, 2,400년 전 아테네의 광장 아고라로 가 보겠습니다.
기원전 400년 무렵, 아테네의 아침. 한 시민이 광장으로 들어섭니다. 입구에는 허리 높이의 돌기둥이 서 있습니다. 돌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나는 아고라의 경계석이다." 이 선 안쪽은 시민 모두의 공간이라는 표시입니다. 광장 안은 구역마다 다른 세상입니다. 생선 좌판에서는 흥정 소리가 높아지고, 향수 가게 앞에는 멋쟁이들이 모여 있습니다. 저울이 미심쩍은 가게에는 시장 감독관이 다가가 관청의 표준 됫박을 꺼내 대조합니다. 상인의 얼굴이 하얘집니다. 그리고 기둥 회랑의 그늘, 맨발의 노인이 젊은이들에게 둘러싸여 묻고 답하는 중입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입니다. 그는 좌판마다 산더미로 쌓인 물건들을 둘러보며 껄껄 웃습니다. "세상에, 내게 필요 없는 물건이 이렇게나 많다니!" 그에게 아고라는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생각을 파는 곳이었습니다.
방금 보신 장면은 발굴된 유물과 문헌을 근거로 상상해 본 것입니다. 1931년부터 고고학자들이 아테네 아고라를 파내려가자 "나는 아고라의 경계석이다"라고 새겨진 돌기둥이 실제로 나왔고, 관청이 보관하던 표준 됫박과 저울추 세트도 출토됐습니다. 시장 감독관과 도량형 감독관을 시민 중에서 뽑아 상인의 저울을 단속했다는 제도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6화의 침묵 교역이 규칙으로 낯선 이와 거래했다면, 아테네는 감독과 표준이라는 공공 장치로 시장의 신뢰를 만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저 감탄은 후대 전기 작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전한 어록입니다. 재미있는 반전도 있습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은 그리스인을 이렇게 비웃었습니다. "도시 한복판에 광장을 만들어 놓고 모여서 서로 속이는 자들." 그런데 역사는 거꾸로 갔습니다. 그 '서로 속이는 광장'의 작은 나라가 대제국의 침공을 물리쳤고, 광장에서 민주주의와 철학과 연극을 길러냈습니다. 물건과 함께 소문과 사상이 거래된 결과였습니다.
자, 오늘의 결론입니다. 기술은 세상의 장면과 장면을 바꿉니다. 흩어져 있던 거래를 경계석 안쪽 한곳에 모으자, 따로따로 이뤄지던 물물교환의 장면은 비교하고 검증하고 토론하는 광장의 장면으로 바뀌었습니다. 시장이라는 발명의 본질은 만남의 밀도입니다. 파는 사람이 모이면 사는 사람은 한 번에 값을 비교할 수 있어 협상력이 커지고, 한 바퀴면 장보기가 끝나는 편리함도 생깁니다. 그리고 밀도가 높아진 광장에서는 물건만 아니라 정보와 사상까지 함께 흐릅니다. 오늘의 플랫폼과 커뮤니티 장터는 디지털로 다시 지은 아고라입니다. "너는 뭐 먹고 살거니?"의 열여섯 번째 힌트는 이것, 물건을 파는 사람보다 사람이 모이는 광장을 만드는 사람이 더 오래, 더 크게 번다는 것입니다. 철이네 오이마켓이 다음 장면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사진: Mark Landon, CC BY 4.0, via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