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바꾼 역사와 문화
<제2화> 80kg짜리 지갑이 없어지고... - 세계 최초의 지폐탄생

요즘 우리는 지갑도 없이 휴대폰 하나로 물건/서비스 값을 치릅니다. 그런데 돈이 너무 무거워서 장을 보려면 수레부터 챙겨야 했던 시대가 있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1,000년 전 중국 쓰촨으로 가 보겠습니다.
서기 1000년경, 중국 쓰촨의 청두 비단 시장. 상인 왕서방은 비단 한 필을 사러 가는데 지갑 대신 수레를 끌고 갑니다. 구리가 귀했던 쓰촨은 철로 돈을 만들었고, 비단 한 필 값은 철전 2만 닢, 무게로 약 80킬로그램이었으니까요. 가게에서는 돈을 세지 않고 저울에 답니다. 주인도 손님도 돈을 세는 일에 오히려 지칩니다. 땀을 닦으며 왕씨가 투덜거립니다. "비단보다 돈이 더 무겁구나." 돌아오는 길에 그는 '교자포'라는 점포에 철전을 맡기고, 맡긴 액수와 붉은 도장, 그리고 그 집안만의 비밀 표식이 찍힌 종이 한 장을 받습니다. "이 종이를 뉘라서 믿소?" "언제든 가져오시오. 그 자리에서 철전으로 바꿔 드리리다." 다음 장날, 왕씨의 수레는 집에 있고 소매 속엔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습니다.
방금 보신 장면은 중국 정사 『송사』 식화지의 기록을 근거로 상상해 본 것입니다. 기록은 꽤 자세합니다. 처음에는 청두의 부유한 상인 열여섯 집안이 사설로 교자를 발행했고, 일부가 맡아둔 철전, 즉 준비금 없이 종이를 남발하다 지급불능 사태를 냈으며, 1023년 송 정부가 익주교자무라는 관청을 세워 발행을 인수했습니다. 이듬해 관청이 찍어낸 교자가 세계 최초의 공식 지폐입니다. 준비금과 발행 한도를 정하고, 동판 인쇄에 여러 색 도장을 겹쳐 위조를 막고, 일정 기한마다 헌 지폐를 새 지폐로 바꿔주는 유효기간 제도까지 뒀고, 위조는 중죄로 다스렸습니다. 오늘날 지급준비율과 보안 인쇄, 화폐 회수 제도의 원조인 셈입니다.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입니다. 교자 한 장이 철전 수만 닢을 대신했으니, 종이 한 장에 실린 '정보'가 쇳덩이 수십 킬로그램의 가치를 실어 나른 것입니다. 250년 뒤 이곳을 여행한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 "대칸은 뽕나무 껍질로 만든 종이를 돈으로 쓰게 한다"며 마치 연금술을 본 듯 적어 두었습니다. 그러나 전쟁 비용에 몰린 조정이 한도를 넘겨 찍어내자 교자의 가치는 폭락했고, 신뢰가 무너진 지폐는 그냥 종이가 됐습니다.
자, 오늘의 결론입니다. 기술은 세상의 장면과 장면을 바꿉니다. 80킬로그램 수레를 끌고 저울로 돈을 달던 장보기 장면은, 종이 한 장을 소매에 넣는 장면으로 바뀌었습니다. 교자가 시장에 들어온 것은 종이가 철보다 귀해서가 아니라, 맡긴 만큼 내어준다는 거래의 본질을 준비금으로 지키면서 압도적 편리함으로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뢰를 잃어버린 순간 가차 없이 퇴출당했죠. 동전에서 지폐로, 지폐에서 카드로, 카드에서 휴대폰으로- 화폐의 역사는 결국 무게를 줄이고 신뢰를 키워 온 역사입니다. 오늘의 디지털 화폐와 간편결제도 정확히 같은 시험대 위에 있습니다. "너는 뭐 먹고 살거니?"의 두 번째 힌트는 이것, 편리함은 고객을 부르고 신뢰는 고객을 남게 한다는 것입니다. 철이네 오이마켓이 다음 장면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사진: Gary Lee Todd, CC0, via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