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마켓기술을 고객가치로 만드는 미디어

과학기술이 바꾼 역사와 문화

<제3화> 로마제국의 로켓배송 - 모든 길은 시장으로 통한다

임윤철 · 2026.07.08

<제3화> 로마제국의 로켓배송 - 모든 길은 시장으로 통한다

밤에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 문 앞에 도착하는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트럭도 고속도로도 없던 시대의 배송은 어땠을까요? 2,000년 전 로마로 가 보겠습니다.

서기 100년경 어느 새벽, 상인 루키우스는 포도주 항아리를 가득 실은 소달구지를 몰고 로마 성문을 나섭니다. 발밑에는 반듯하게 깎인 현무암 판석이 지평선 끝까지 곧게 뻗어 있습니다. 아피아 가도입니다. 1,000걸음마다 돌기둥 이정표가 서서 다음 도시까지 남은 거리를 알려줍니다. 돌기둥에는 거리만이 아니라 이 길을 누가 놓고 누가 보수했는지까지 새겨져 있습니다. 길 가운데가 살짝 불룩해서 밤새 내린 비는 양옆 도랑으로 흘러내려 갑니다. 진창에 바퀴가 빠져 하루를 버리던 시골길과는 다른 세상입니다. 해 질 무렵 루키우스는 하루 거리마다 놓인 역참에 도착해 지친 소를 바꾸고 잠자리를 얻습니다. 자리에 누우며 그는 중얼거립니다. "길이 좋으니 장사할 맛이 나는구나. 다음에는 항아리를 두 배로 싣고 와야겠다."

방금 보신 장면은 실존하는 기록과 지금도 남아 있는 유적을 근거로 상상해 본 것입니다. 아피아 가도는 기원전 312년 감찰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가 놓기 시작한 길로, 2,300년이 지난 지금도 로마 교외에서 직접 걸어볼 수 있습니다. 로마인의 도로 공학은 지금 봐도 놀랍습니다. 땅을 깊게 파서 큰 돌, 자갈, 모래를 층층이 다져 넣고 맨 위에 판석을 깔았는데, 이는 현대 도로 포장의 단면 설계와 같은 원리입니다. 이렇게 깔린 포장도로만 8만 킬로미터, 지구 두 바퀴 길이였습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로마 광장에 '황금 이정표'를 세워 제국 모든 도로의 거리를 재는 기준점으로 삼았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반전이 있습니다. 서기 301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물가가 자꾸 오르니까 이를 통제하려고 최고가격령을 발표합니다. 그때에 운송비 기록이 남아 있는데, 곡물을 수레로 먼 길을 옮기면 운송비가 곡물값에 맞먹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이미 물류비라는 개념을 뼈저리게 알았고, 그래서 무거운 짐은 바닷길로, 급하고 귀한 것은 도로로 보내는 복합 물류를 운영했습니다.

자, 오늘의 결론입니다. 기술은 세상의 장면과 장면을 바꿉니다. 도로가 놓이기 전 사람들은 마을 장터에서 그 동네 물건만 사고팔았지만, 도로가 놓이자 히스파니아의 올리브유와 갈리아의 도기와 그리스의 포도주가 한 시장에 나란히 놓이는 장면으로 바뀌었습니다. 도로는 상인에게 빠르고 안전한 이동이라는 편리함을 주었고, 소비자에게는 멀리서 온 상품들을 견주어 고르는 선택지, 곧 협상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도로라는 기술은 시장 안으로 들어왔고, 제국을 하나의 시장으로 묶었습니다. 오늘의 아피아 가도는 아스팔트가 아니라 광케이블과 물류센터, 그리고 데이터가 달리는 네트워크입니다. "너는 뭐 먹고 살거니?"의 세 번째 힌트는 이것, 물건을 만드는 사람도 돈을 벌지만 길을 놓는 사람이 시장을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철이네 오이마켓이 다음 장면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사진: Livioandronico2013,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