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바꾼 역사와 문화
<기술과역사, 제28화> 아이디어에 값을 매기다 — 특허의 탄생

기술을 개발하면 특허부터 출원합니다. 아이디어가 재산이 된다는 이 상식은 언제 만들어졌을까요? 놀랍게도 세계 최초의 특허법 원문이 지금도 남아 있고, 표결 결과까지 적혀 있습니다. 1474년 3월 19일, 베네치아 원로원으로 가 보겠습니다.
바다 위의 공화국 베네치아, 원로원 회의장. 서기가 새 법안을 낭독합니다. "이 도시에는 온갖 곳에서 온 천재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새롭고 정교한 장치를 발명한 자가 그것을 등록하면, 앞으로 10년간 다른 자가 베끼지 못하게 하십시다. 베낀 자에게는 벌금을 물리고 장치는 부수겠습니다. 그리하면 재주 있는 자들이 머리를 짜내 발명할 것이고, 그 발명은 우리 공화국에 이로울 것입니다." 웅성거림 끝에 표결이 시작됩니다. 찬성 116, 반대 10, 기권 3. 인류 최초의 특허법이 통과되는 순간입니다. 회의장을 나서던 한 의원이 동료에게 묻습니다. "물건도 아니고 생각을 어찌 재산으로 지킨단 말이오?" 동료가 답합니다. "생각이 돈이 되어야 사람들이 생각을 하지 않겠소."
방금 보신 장면은 베네치아 국립문서보관소에 남아 있는 1474년 특허법 원문을 근거로 상상해 본 것입니다. 낭독 내용도 표결 숫자도 실제 기록 그대로입니다. 사실 개별 특허는 그보다 먼저 있었습니다. 1421년 피렌체는 돔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에게 대리석 운반선에 대한 3년 독점권을 주었는데, 이것이 기록상 최초의 발명 특허로 꼽힙니다. 결말은 얄궂게도 그 배가 첫 항해에서 짐과 함께 가라앉았다는 것이지만요. 최초의 특허법을 가진 베네치아에서는 이후 100여 년간 유리 기술자들과 발명가들의 특허 등록이 이어졌고, 1594년에는 갈릴레오도 물을 퍼 올리는 양수 장치로 베네치아 특허를 받았습니다. 이 제도는 베네치아 유리 장인들이 유럽으로 흩어지면서 함께 퍼져나가 영국의 전매조례로, 다시 각국의 특허법으로 자랐습니다. 발명을 감추는 대신 공개하게 하고, 공개의 대가로 한시적 독점을 주는 맞교환의 구조는 55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한 해에 출원되는 특허가 300만 건이 넘으니, 베네치아의 그 표결은 인류 역사에서 가성비가 가장 높았던 입법인지도 모릅니다.
자, 오늘의 결론입니다. 기술은 세상의 장면과 장면을 바꿉니다. 장인이 기술을 자식에게만 몰래 물려주던 장면은, 발명을 문서로 공개하고 나라가 그 권리를 지켜주는 장면으로 바뀌었습니다. 특허의 본질은 아이디어를 거래 가능한 재산으로 바꾼 것입니다. 형태도 무게도 없는 생각에 등기부를 만들어주자, 발명가는 투자자와 협상할 밑천이 생겼고 사회는 감춰졌을 기술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프롤로그에서 말씀드린 기술사업화, 곧 기술을 사고파는 모든 거래가 바로 이 등기부 위에서 이뤄집니다. 다만 베네치아 사람들이 알았던 진실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특허는 시작일 뿐, 브루넬레스키의 배처럼 시장에서 가라앉으면 독점권도 종잇조각이라는 것을요. "너는 뭐 먹고 살거니?"의 스물여덟 번째 힌트는 이것, 아이디어는 등록될 때가 아니라 거래될 때 비로소 재산이 된다는 것입니다. 철이네 오이마켓이 다음 장면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사진: 베네치아 국립문서보관소 소장 (퍼블릭 도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