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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칼럼]손에 잡히는 사업혁신-기본 가정을 피보팅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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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이나 정설이라고 불리는 것에는 언제나 수많은 가정(assumption)이 깔려 있다. 우리는 그것을 거의 의식하지 않은 채 받아들이고, 그 위에서 사고하고 판단하며 의사결정을 내린다. 문제는 그 가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거나, 환경이 이미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연한 것으로 취급된다는 점이다. 많은 조직에서 혁신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존의 전제를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학식을 증명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변수를 정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는 그 변수가 어떤 조건과 범위 안에서 성립하는지를 전제하는 일이다. 영어에서 흔히 쓰는 ‘Given…’이라는 표현은 우리말로 ‘~라고 할 때’와 같이 전제를 의미하는 표현이다. 전제가 달라지면 같은 공식이라도 전혀 다른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증명의 핵심은 계산이 아니라, 어떤 가정을 두고 출발하는가에 달려 있다.
코딩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맨 처음 하는 것이 변수의 정의이고, 그 다음이 ‘If & Then’이라는 가정의 설정을 통해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일이다. 변수의 정의와 변수 간의 가정이 바뀌면 흐름 전체가 달라지고, 결과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결국 사고의 출발점은 언제나 가정인 것이다. 우리는 종종 결과나 성과만을 놓고 논쟁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 단계에서 어떤 가정을 깔고 있었는지를 점검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
가정이라는 말이 다소 학문적으로 느껴진다면, 일상어로는 전제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어떤 조건을 충족할 때 다음 주장이 성립한다고 말하는 것이 명제이고, 이를 풀어서 말하면 논리와 주장이 된다. 우리가 흔히 ‘원래 그렇지 않을까?’라고 말할 때, 사실 그 말 속에는 많은 전제가 함축되어 있다. 그 전제들이 여전히 유효한지, 아니면 이미 바뀐 환경 속에서 재검토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본 가정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좀 더 일상적인 예시를 들어 보면 이해하기 쉽다. 우리가 흔히 “회의는 직접 모여서 해야 효율적이지 않나?”라고 말할 때, 그 말 속에는 회의의 질은 대면 여부에 달려 있다, 물리적 이동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가 이미 포함돼 있다. 이 전제들이 충족될 때에만 ‘대면회의가 효율적이다’라는 주장이 성립한다. 그러나 화상회의 도구와 협업 시스템이 보편화된 지금, 이 전제는 여전히 유효한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혁신은 기존의 일을 무조건 부정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심코 깔아두었던 전제를 다시 점검하는 데서 출발한다.
저명한 혁신 컨설턴트인 로완 깁슨(Rowan Gibson)이 제시한 일상 속 사례들은 이러한 사고의 전환이 어떻게 혁신으로 이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운동화와 구두는 갑피(upper)와 밑창(sole)을 포함한 수십 개의 부품을 붙여 조립식으로 만드는 것이 기본 구조로 여겨져 왔다. 브랜드에 관계없이 70년 이상 유지되어 온 이 방식은 ‘신발은 원래 그렇게 만드는 것’이라는 강력한 가정을 만들어냈다. 이 가정은 오랫동안 의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키는 이 전제에 질문을 던졌다. 갑피를 여러 부품으로 조립하지 않고, 아예 짜서 만들 수는 없을까?라는 발상이었다. 그에 따라 직조 방식의 플라이니트를 도입함으로써 제조 공정 자체가 바뀌었고, 그 결과로 신발의 무게는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동시에 디자인의 자유도는 오히려 높아졌고, 이는 기능성과 심미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고가 운동화 시장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보다, ‘신발은 조립식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뒤집었다는 점이다.
사탕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라는 통념 역시 하나의 가정일 뿐이었다. 성인용 사탕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낸 제프 루빈(Jeff Rubin)은 ‘사탕은 아이들 것이다’라는 오랜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사탕을 성인 취향·경험·유희의 대상으로 재정의해 완전히 ‘It’s Sugar (IT’SUGAR)’라는 새로운 소매점 프랜차이즈를 성공시킨 창업가이다. 그 역시 어른들이 사탕을 더 좋아할 수도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 작은 질문은 곧 제품 구성과 매장 콘셉트, 고객 경험 전반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꽃사탕, 동물 모양 마시멜로, 캐릭터형 젤리, 속옷 모양 사탕까지, 기존 사탕 시장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제품들이 등장했다.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즐기는 특이한 사탕가게인 것이다.
진단장비는 병원에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가정도 마찬가지다. 이 전제를 바꾸자, 들고 다닐 수 있는 휴대용 초음파 진단 장비가 등장했다. 자연 방목 고기와 유기농 최고급 식재료를 사용한 ‘프리미엄 패스트푸드’라는 개념 역시 ‘패스트푸드는 싸고 빨라야 한다’는 통념을 뒤집은 결과다. 모바일 기기를 TV로 확장해 스트리밍 서비스로 성공한 사례도, TV는 거실에 있는 기기로 소비된다는 전제를 다시 쓴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혁신들은 모두 거창한 기술적 도약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은 이미 존재하던 기술과 자원을 전혀 다른 전제 위에 재배치한 결과다. 즉, 혁신의 본질은 무엇을 새로 더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는지를 다시 묻는 데 있다.
이 시각에서 보면, 병원은 아픈 사람이 가는 곳이라는 전제 역시 하나의 선택지에 불과하다. 이 가정을 건강한 사람이 찾아오는 공간으로 바꾸자 건강관리 전문병원이 등장했다. 벨기에의 ‘Dinner in the Sky’ 레스토랑 역시, 식당은 땅 위에 있지 않고 하늘 위에 있어도 된다는 가정의 전환으로 시도되었고, 땅 위에서 식당 세트를 제작해 크레인으로 공중에 들어 올리는 방식으로 구현되었다. 안경은 매장에서 직접 써보고 사야 한다는 가정을 바꾸어 온라인 공간으로 안경점을 옮긴 미국의 Warby Parker의 사례는 안경의 유통 구조 자체가 재설계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제 질문은 우리에게 돌아온다. 우리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에는 어떤 고정관념이 깔려 있는가? 그리고, 그 고정관념을 구성하고 있는 전제와 가정은 무엇인가? 그중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이고, 과감하게 바꿔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혹시 ‘업계 관행’이라는 말 뒤에 숨어 사고를 멈추고 있지는 않은가?.
이 질문을 끝까지 밀고 나갈 때, 사업혁신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손에 잡히는 결과로 나타난다. 혁신은 멀리 있는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다. 이미 익숙해진 전제를 낯설게 바라보고, 다른 조건을 상상해보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상상이 고객에게는 새로운 가치로, 조직에는 지속 가능한 경쟁력으로 돌아올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어쩌면 ‘가정(home)’을 제외한 대부분의 ‘가정(assumption)’은 다시 써보아야 할 대상일지도 모른다. 바로 그 지점에,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다음 사업혁신의 출발선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김현주 경영학박사
㈜기술과가치 파트너
성과와역량 대표